[Law&Biz] 국제 카르텔 '규제 덫'…리니언시로 넘어라
입력
수정
● 법무법인 화우, 공정거래 세미나
美·EU '反카르텔' 처벌 강화
국내기업 5년간 1조넘는 과징금
법무팀 감시기능 강화해야
'국제 카르텔(2개국 이상 기업 간의 담합)'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가 국내 기업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간판 기업들이 이미 국제 카르텔 혐의로 미국이나 유럽연합(EU)으로부터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두들겨 맞았다. 여기에 임원들은 기소되고 기업 이미지도 커다란 손상을 입는다. 무역장벽이 허물어진 이후 각국이 국제 카르텔에 대한 고삐를 바짝 죄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방어책은 여전히 허술한 탓이다. 대한상공회의소,법무법인 화우,미국 로펌인 깁슨던 앤 크러처가 최근 개최한 '공정거래법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은 "국제 카르텔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어떤 기업도 제재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현재 상태로는 한국 기업들이 카르텔 규제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국제 카르텔 과징금,형사적 처벌 강화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가 2005년 이후 국제 카르텔 혐의로 다국적 기업에 물린 과징금은 31억달러(3조5000억원)에 이른다. 2005년 3억3800만달러(3800억원)였던 과징금은 지난해 10억달러(1조1300억원)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형사적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 법무부가 카르텔에 가담한 회사의 임원들을 적극적으로 기소하면서 2000년 이후 150명 이상이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했거나 복역 중이다. 이들은 2001년에는 평균 15개월형을 선고 받았지만 처벌이 강화되며 지난해엔 평균 2년형을 선고 받았다.
유럽연합(EU)은 제재 수위가 더 높다. EU는 2005년부터 국제 카르텔 혐의로 다국적 기업에 97억 유로(14조9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8년에는 자동차유리 업체들의 담합을 적발, 한 기업에 무려 9억 유로(1조3800억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물리기도 했다.
미국과 EU가 국제 카르텔에 칼을 빼든 것은 글로벌 시장이 공정한 경쟁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 원리로 운용되도록 철저히 관리 · 감독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아시아 등 신흥 무역국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활발해진 상황에서 자국 기업에 불리한 어떤 행위도 용납치 않겠다는 견제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깁슨던 앤 크러처의 개리 스프라틀링 변호사는 "미국이 더 많은 인원과 자원을 반카르텔 노력을 위해 투입하는 등 각국이 반카르텔 행위에 대한 법 집행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은 희생양
국내 기업들은 국제 카르텔로 인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재를 받고 있다. 2005년 이후 국내 기업에 부과된 과징금은 11억8500만달러(1조3400억원)로 전체 과징금의 30%를 차지했다. 역대 가장 많은 과징금을 문 10개 기업 가운데 4개 기업이 국내 기업일 정도다. 형사책임도 면치 못했다. 삼성전자 대한항공 하이닉스의 임원들이 기소됐고 일부는 복역하기도 했다.
법조계는 국내 기업들이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 프로그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리니언시 프로그램은 카르텔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당국이 새로운 카르텔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제도로,카르텔 제재에 대한 최대의 방어수단으로 꼽힌다. 현재 50개국이 도입하고 있다. 이 제도를 가장 활발히 이용하는 미국은 가장 먼저 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을 완전 면제해 주는 것은 물론 임원을 기소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매년 2만건의 신고가 미국 법무부에 접수될 정도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리니언시 프로그램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경쟁사의 카르텔 정보를 신속하게 신고하는 게 관건이지만 늦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미국 기업의 신고로 'D램사건'에 연루돼 수천만달러의 과징금을 물었고,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독일 기업의 신고로 '에어카고 사건'에 연루돼 거액의 과징금을 물었다.
따라서 법조계는 기업 내부에서 국제 카르텔 조짐이 포착될 경우 리니언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고를 당하기 전에 먼저 신고를 해 최대한 처벌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를 위해서는 신고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의사결정자들이 기업 내부와 국제 카르텔 동향에 관한 합리적인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법무법인 화우의 허선 선임 컨설턴트는 "카르텔의 대부분은 마케팅 라인에서 벌어지는데 국내 기업의 법무 라인은 이에 대해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마케팅 라인에 눌려 리니언시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못하고 엄청난 제재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무팀이나 외부 변호사들을 활용해 카르텔 감시 기능과 경쟁사에 대한 보고 수집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