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곡은 제 음악 인생의 소중한 젖줄이죠"
입력
수정
새 음반 내고 전국 투어 나서는 조수미
"연주자 하나하나가 솔리스트처럼 자기 색깔을 뿜어내 주인없는 앙상블을 이룬 음반"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48)는 스물한 살 때인 1983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날아갔다. '독일 가곡의 여왕'으로 불렸던 최고의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가 진행하는 마스터 클래스를 듣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아버지의 LP음반으로 슈바르츠코프가 부르는 브람스의'자장가'를 처음 들은 이래 조씨는 독일 가곡 애호가였다. 세계를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도 슈바르츠코프의 선율을 잊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독일 가곡집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유니버설뮤직)를 녹음한 것도 어린 시절 들었던 독일 가곡의 매력을 잊지 못해서였다.
새 음반 출시와 함께 전국 투어에 나서는 조씨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앨범은 저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끄집어낸 것"이라며 "슈바르츠코프의 마스터클래스 강의는 제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독일가곡집을 냈을까.
"독일가곡을 좋아하면서도 전에는 부르거나 녹음하지는 않았어요. 절제미가 두드러지는 독일 가곡보다는 제 능력을 정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벨칸토 창법이 돋보이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죠. 사실 그 땐 어려서 독일 가곡의 깊이를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했고요. "5년 만에 정통 클래식을 담아낸 이 음반은 모차르트의 '클로에에게''봄을 향한 동경',슈베르트의 '마왕''송어''들장미',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침' 등 독일 명가곡을 모은 것.볼프 등의 독일 가곡처럼 난해한 노래보다 국내 초 · 중 · 고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곡들로 꾸몄다. 그렇다고 무난하게 작업한 것은 아니다. 보통 피아노 한 대의 반주로 독일 가곡을 녹음하지만 이번에는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를 포함한 피아노6중주로 편곡해 현대적 감각에 맞도록 재해석했다.
반주에 참여한 연주자들이 한국의 신예들인 것도 새롭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강주미,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기타리스트 이정민 등 해외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다.
"편곡도 한국의 젊은 음악도가 하도록 했죠.이제 저도 받기보다는 베푸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사회적 활동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그래야 하는 나이죠.이번 음반은 저만의 것이 아니에요. 보통 이런 종류의 앨범은 성악가가 돋보이지만 이번엔 연주자 하나하나가 솔리스트처럼 자기 색깔을 뿜어내죠.따로 주인이 없는 앙상블을 이룬 음반이에요. "이번 녹음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이미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떠나버린 작곡자들을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씨는 작업하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마다 악보만 남긴 그들과 얘기하지 못해 답답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앨범에 담긴 모차르트,슈베르트,브람스의 '자장가'가 고민이었다. 워낙 많이 불려진 곡이어서 세 자장가를 모두 색다르게 연주해야 했다. 그는 "결과물을 볼 때 모차르트의 자장가가 가장 마음에 들지만 저 세상에 있는 모차르트가 듣는다면 내 음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25일 음반 발매 이후 수록곡을 위주로 공연도 갖는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마산 아트센터(4월3일),대전 문화예술의전당(7일),고양 아람누리 대극장(9일),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11일)으로 이어지는 5개 도시 투어 콘서트다. 이번 공연에서는 독일 가곡 외에 '세상에서 가장 부르기 어려운 아리아'로 꼽히는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나오는 '고귀하신 공주님'을 부른다. 소프라노의 한계음인 높은 F음을 무려 세 번이나 찍어야 하는 최고 난이도의 콜로라투라(높은 음에다 최고 난이도의 음역대) 선율의 곡이다.
20분 이상 높은 음역대를 쉬지 않고 불러야 할 정도로 힘에 겨운 이 곡은 1916년 이후 수정본으로 공연됐지만 1997년 조씨는 세계 최초로 수정본이 아닌 원본으로 녹음해 지구촌 클래식 마니아들의 격찬을 받았다.
그는 "한번 부르면 진이 빠지는 힘든 곡이지만 국내 팬들을 위해 특별히 선곡했다"며 "사실 컨디션이 매우 좋은 상태에서 녹음했던 수준 만큼 잘 부를 자신은 없다"고 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