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유보금 투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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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 보유현금 87조원 넘어상장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87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부채자본비율을 낮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금은 대부분의 상장기업들이 100%대를 유지하고 있어 재무구조의 건전성이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다. 과거 10년 동안 보수적으로 기업운영을 해온 결과로 대기업들의 현금보유액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적정규모 투자로 경쟁력 유지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기업의 재무적인 안전성을 보장해 주지만,현금 그 자체가 수익성을 높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금을 많이 보유하면 할수록 기업에는 기회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기업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 있다. 반면에 현금이 부족하면 기업은 채무를 제때 변제할 수 없어 부도가 날 수도 있고,이러한 부도위험 때문에 높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하기도 한다. 따라서 기업은 적정 규모의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 기업 영업성격상 현금흐름의 기복이 큰 기업은 비교적 많은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현금흐름의 기복이 적은 기업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직도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발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에는 세계경제가 최악의 위기국면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전망이 좋아질 것이라고는 하지만,아직도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다. 따라서 기업의 현금흐름을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은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기업의 효과적인 현금관리란,현금보유금액의 크기 그 자체보다도 현금흐름의 내용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 대부분이 외부의 부채로 조달되었다면,장기적으로 기업에 높은 이자비용의 부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금 보유액이 비교적 적더라도 현금이 영업활동으로부터 창출되었다면 이는 매우 질 좋은 현금이다. 이러한 현금은 기업의 투자에 과감히 사용될 수 있다. 기업이 가장 안전하게 그리고 가장 값싸게 조달할 수 있는 현금이 바로 영업활동에서 조달한 현금이다.
이러한 현금을 그대로 기업에 쌓아 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이는 보수적으로 현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켜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경쟁사회에서 다른 기업이 열심히 뛰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업에서 조달된 것과 같은 질 좋은 현금을 가지고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작년에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비교적 선전했다. 이제 대부분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끝나면서 그동안 꾸준히 강화해 온 원가 경쟁력과 환율효과 덕에 상장기업들이 재작년보다 높은 약 59조원의 영업이익을 창출했음이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질 좋은 현금은 신성장 동력을 찾고 기업 핵심가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그러나 과욕은 금물이다. 유명한 기업 컨설턴트 램 차란은 "최고기업도 2주일 내 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만큼 현금흐름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이 어떻게 망할 수 있는가'라는 저서에서 성공을 거듭한 기업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오만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의 성공이 자신들의 우수한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운도 많이 따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에 꾸준히 투자를 해야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전략보다는 적은 규모의 투자로 성공가능성을 타진해 가면서 점차 투자를 늘리는 전략이 기업의 장기 생존에 중요하다.
주인기 < 연세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