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 기자의 자동차 세상] 수입차 업체들이 부산모터쇼를 외면하는 까닭은…

"벤츠가 부산 고객을 무시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단지 비용 문제로 모든 모터쇼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죠.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한국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서울모터쇼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

하랄트 베렌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이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한 얘기입니다. 모터쇼 참가 여부를 놓고 부산지역 시민단체와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한 듯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었죠.다음 달 29일 열리는 부산모터쇼에 출품 의사를 밝힌 곳은 현대 · 기아차 등 국내 5개사 외에 수입차로는 스바루와 로터스가 유일합니다. 로터스는 한국수입차협회에도 가입하지 않았고,스바루는 다음 달에야 국내 판매를 개시하는 곳이죠.두 업체마저 이달 들어서야 참여를 확정했을 정도로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 16일 벤츠의 부산 해운대구 전시장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습니다. BMW와 폭스바겐 매장 역시 집중 표적으로 삼았지요. 이들은 "수입차 업체들이 모터쇼 불참을 선언한 것은 이익에만 눈이 멀어 부산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합니다. 끝까지 참여하지 않을 경우 불매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지요.

부산 벡스코 역시 수입차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입니다. 참가비용과 전시시설 임대료를 깎아주는 한편 각국 대사 등을 만나 해당 국가 기업들이 모터쇼에 참여하도록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부산모터쇼는 서울모터쇼와 격년제로 열릴 때마다 100만여명이 관람하는 큰 행사입니다. 서울모터쇼처럼 '국제'(international) 전시회이기도 하지요. 올 들어 수입차 경기도 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업체들은 부산모터쇼에 나갈 수 없다고 버팁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는 '경제적인' 판단에서입니다. 단순히 차량만 전시해도 부대 비용을 포함해 5억원에서 최대 30억원이 든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입니다.

반면 부산모터쇼의 국제적인 인지도는 미미한 게 사실입니다. 해외 거물급 최고경영자(CEO)들은 다음 달 23일 개막하는 베이징 국제모터쇼에 대거 들르지만,부산모터쇼는 찾지 않을 계획입니다. 전시회 프레스데이가 애매하게 일주일 정도 차이나는 탓이죠.외국 임원들이 오지 않으면 해외 언론도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명색과 달리 '동네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행사 주최와 관련이 있습니다. 부산모터쇼의 주최기관은 부산시입니다. 하지만 서울모터쇼의 경우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수입차협회,자동차공업협동조합 등 3개 기관이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공동으로 개최하지요. 기업들은 서울모터쇼가 '자신들의 행사'인 반면 부산모터쇼엔 상대적으로 거리감을 느낀다고 얘기합니다.

문제는 2년 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 수입차 업체 CEO는 "프랑크푸르트,파리,제네바,도쿄 등 각국마다 대표 모터쇼가 한 개뿐인데,한국에서만 서울과 부산이 경쟁적으로 국제모터쇼를 열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수입차 업계에서 '축제'가 아닌 '계륵' 취급을 받고 있는 부산모터쇼.2년 후에는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상황 분석과 판단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산업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