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쿠오바디스, 저금리 시대
입력
수정
'금융완화' 지속 기대감 커국내 금융 시장에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3개월째 사상 최저 수준인 2%에 머물러 있다. 시장 금리도 하락중이다. 대표적인 시장 금리인 국고채 3년물은 최근 10개월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회사채 금리도 신용 등급에 상관없이 낮아지는 추세다.
금리인상 충격 미리 대비해야
여전히 불확실한 국내외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저금리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우선 세계 경제 위기 상황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서유럽 국가들의 재정난과 같은 경제 불안 요인들이 불거지고 있다. 국내 경제의 회복 기조도 아직은 미약하다. 생산이 꾸준히 늘고는 있으나 소비와 투자는 최근 들어 주춤하는 양상이다. 저소득층의 가계 부채는 계속 늘고 있으며 중소기업들의 경영 상태도 호전된 것은 아니다. 대내외 경제가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섣부른 금리인상은 자칫 경제 회복의 불씨마저 꺼뜨릴 수 있다. 위험 부담이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경제의 안정적 회복과 성장을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리가 너무 낮은 상태에서 오래 지속되면 시장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리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돈 빌리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 부채가 늘어나게 되고 돈을 싸게 빌려 수익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투기자금'을 양산하는 결과를 유발한다. 외환위기 이후 신용카드 빚이 급증하고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낀 것은 이러한 후유증의 대표적 사례다.
통화 팽창으로 물가가 오르면 저금리로 인한 경제적 실익은 물거품이 된다.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도 어렵게 해 오히려 경제불안을 더욱 조장한다. 수익성이 없는 기업들이 빚으로 연명하면 그만큼 경제적 기회비용이 커지게 마련이다. 저금리는 금리 생활자들의 어려움도 가중시킨다. 금융 자산에 의지해 살아가는 퇴직자나 고령자들은 금리가 낮아질수록 소비 여력이 그만큼 상실된다. 금리가 적정수준을 너무 밑돌게 되면 금리 상승폭이 커져 금리 변동성도 높아진다. 세계경제와 국내경기가 확실하게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금리정책의 방향을 정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당장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없지만 국내외 경기가 또다시 위기국면으로 빠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 저금리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경기가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것이라 판단된다면 금리를 전격적으로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금리인상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은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 저금리 상태 지속에 대한 과도한 기대심리가 형성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다. 근래 시장금리가 빠르게 내려간 데에는 통화당국의 금융완화정책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두번째는 금리인상 시기에 받게 될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계와 기업의 무분별한 신규대출이 늘지 않도록 하고,금융회사들의 부실대출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해 이를 점진적이면서도 확실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세번째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 더 이상 거품이 생기는 것을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한다. 국내 부동산 가격은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위기 속에서도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상향 추이를 유지했다. 그동안 크게 불어난 시중유동성이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질 경우 부동산 시장으로 급속히 몰려들 우려가 크다. 금리는 마치 경제 활동의 건전성을 지켜주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경제는 부패하고 활력을 잃는다. 금리 기능 유지를 위한 통화당국의 보다 깊은 고뇌와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유병규 < 현대경제硏 경제연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