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게임중독 해법 찾기

20대 남성이 인터넷 게임을 그만 하라고 나무라는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하는가 하면,게임에 빠진 부부가 갓 태어난 딸을 굶겨 죽이는 등 충격적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부가 중독된 게임은 '딸 양육 놀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가상세계의 딸을 키우느라 현실의 딸을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꼴이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중독률은 8.8%에 이르고 중독자 수는 200만명에 육박한다. 더구나 9~19세 아동 · 청소년 가운데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 중독자는 16만8000여명,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잠재위험군은 86만7000여명이나 된다. 개인에게 불행인 것은 물론 나라 전체로 볼 때도 심각한 수준이다. 1990년대 말 인터넷이 일상화된 만큼 청소년기 인터넷을 접한 이들이 성인이 된 요즘 중독이 슬슬 표면화되기 시작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성인 중독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사회적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런 데도 게임업계에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소액을 출연해 상담센터를 만드는 데 그치고 있다.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던 정부도 얼마 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랴부랴 7개 부처 공동으로 인터넷 중독 예방 · 해소 종합계획을 내놨다.

종합계획의 내용은 2012년까지 중독률을 5% 이하로 낮추기 위해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이용시간을 조절한다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예방교육 강사와 파견 상담사 육성,인터넷 이용시간 조절 프로그램 보급 등의 방안이 포함돼 있다. 목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상식 수준의 대책만으로 중독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은 이미 삶의 방식마저 바꿨을 정도로 깊고 넓게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게임만 봐도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30대 이하 세대에게 게임은 '일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08년 말 기준으로 10대의 70% 이상,20대의 50% 이상이 정기적으로 게임을 즐긴다. 30대도 3분의 1을 넘는다. 이 가운데 400여만명은 매월 꼬박꼬박 돈을 내고 게임을 즐기는 마니아다. 온라인 게임에 접속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려 1700만명으로 추산된다. 간단한 예방교육이나 상담,사용시간 조절 정도의 대책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해법은 오히려 게임 또는 가상세계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게임의 순기능을 발전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의미다. 예를 들어 가상세계에서 얻어지는 경험을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을 높임으로써 게임시간 조절능력을 키워가는 방안을 검토해 볼만하다.

가상세계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성을 갖고 있다. 게임중독에 대한 우려와 함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도 높여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는 가상세계가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범위와 속도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빨라질 게 틀림없다.

가상세계가 현실에 버금가는 무게감을 갖게 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다. 게임중독 대책도 단순히 그 위험성을 알리고 규제하는 것보다 게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내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모색하는 게 옳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