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한국 길목에서] '문화적 재산'을 키우자

10여년 전쯤 이야기다. 동유럽의 한 작은 국가로부터 그곳 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당시 동유럽 여러 나라들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경제 건설을 위해 개방바람이 한창 불던 때였다. 내가 방문한 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경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새벽에 거리 산책에 나섰는데 빵가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신기해 한참 구경을 했다. 그런데 절반 정도 줄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나머지 사람들은 빵을 사지 못하고 돌아갔다. 밀가루 공급이 제대로 안돼 주민이 먹을 빵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경제 사정에 처해 있었던 것이었다. 음악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도 기억에 떠오른다. 낡은 피아노,좋지 않은 현악기,방음이 되지 않는 연습실 등 환경이 열악한 상태였다. 첼로를 공부하는 학생이 악기의 음량과 음질을 바꾸는 조그만 도구(약음기)가 없어서 머리빗으로 대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오케스트라와 연습이 끝난 후 악장에게 내가 가진 약음기를 선물하자 너무나 고마워 해서 활털에 바르는 송진도 함께 주었는데 악장이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1960~70년대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혼자 박수를 보냈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감동케 한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국립교향악단과의 공연을 무사히 끝낸 뒤 음악가들의 공연이 보고 싶어 티켓을 부탁했는데 놀랍게도 3개월 전에 이미 다 팔렸다는 것이었다. 음악회뿐만 아니라 발레,연극 등 매일 있는 공연들이 거의 매진이어서 표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공연 직전에 취소된 표를 구해 관람을 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마냥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표값이 부담없는 가격인 이유도 있었지만 먹을 것조차 없는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추구와 열정은 대단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 규모가 세계 9위에 올라섰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올해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회의의 주최국으로서 금방이라도 선진국 문턱을 넘을 듯싶은 자부심으로 한껏 고양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경제수준만 올라간다고 해서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국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많은 분야가 함께 가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쉽게 문화와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과 정신적 여유를 갖고 있는지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연주 수준은 어느 새 선진 외국의 공연단체에 비해 그리 뒤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각종 문화 예술 행사에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예를 들면 1000만명이 훌쩍 넘은 서울 시내에 번듯한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두 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목적용으로 쓰이는 구민회관 정도가 있어서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달래주는 공간으로 이용되는 실정이다.

각자 사정이 다르긴 하겠지만 샐러리맨들이 퇴근 후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라도 갈 경우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서둘러야 겨우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모습을 보면 연주자 입장에서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거기다 간혹 해외의 유명 악단이나 음악가가 초청되면 이를 보고싶어 하는 관객은 많은데 표값이 만만치 않다. 이런 것들이 서민 대중이 일상에서 쉽게 음악적 권리를 향유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살기에 바빠서,일에 쫓겨서 그런지 아직은 우리가 문화 예술을 즐기기엔 정신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것 같다. 소득이 많아진다고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정신적 재산이 함께 커질 때 진정한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이 부담없이 여유롭게 생활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경제 발전과 함께 갖춰져서 우리도 공연 3개월 전에 티켓이 매진되는, 멋진 선진 대한민국이 빨리 되기를 꿈꾼다.

/김영준 서울신포니에타 음악감독·서울시립대 교수

한국경제·우리은행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