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지쳐…봄 찾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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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마중 가는 길
새롭게 단장한 북한산 순레길…
제주 올레 느낌, 유모차도 가는 쉬운길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선녀못·얼음골·테마숲 골라 걷는 재미
청계산 원터골·옛골…
힘 안들이고 오르는 치유의 산, 맛집은 덤
4월이 코앞인데 봄은 왜 이리 더디게 올까. 주중에 간간이 내린 비도 봄비라기보다는 막차를 탄 겨울비에 가까웠다. 지역에 따라서는 때아니게 눈까지 내렸으니 몸도 마음도 아직은 겨울 모드다.
하지만 실내에서 벗어나 흙이 있는 곳을 살펴보면 어느새 성큼 다가온 봄이 얼굴을 내민다. 양지바른 곳에서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개나리와 새순을 돋워내는 쑥,연초록빛을 띠기 시작한 나뭇가지와 한결 화사해진 햇살,그리고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는 개울….봄은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더디 오지만 마중을 나가는 이에겐 벌써 와 있다. 참으로 걷기 좋은 계절이다. 꽃나들이든 봄마중이든 봄과 함께 걸어보자.걷기는 등산과는 사뭇 다르다. 정상을 향해 수직으로 오르는 등산에 비해 걷기는 수평적이고 편안하다. 가족이나 연인,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봄처럼 기지개를 켜지 않을까.
◆자연과 역사가 숨쉬는 북한산 순례길
서울 우이동 덕성여대 앞 솔밭공원.줄지어 늘어선 소나무들을 지나 한적한 길로 접어들면 '순례길'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북한산국립공원이 막 정비를 마친 새로운 트레킹 코스다. 순례길은 '둘레길(공원 둘레에 난 길)'의 일부로 솔밭공원 입구부터 보광사를 지나 통일연수원까지 이어지는 3.4㎞ 구간이다. 순례길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이준 열사,신숙 선생,김창숙 선생 등 순국선열 열네 분의 묘역과 4 · 19국립묘지 뒤편을 지나기 때문이다. 현재 이용할 수 있는 북한산 둘레길은 지난해 개방한 우이령길과 이번에 새롭게 정비한 순례길 두 구간.콘크리트 대신 마사토를 덮은 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 좋다. 나무다리와 섶다리,흙길 등은 걷기에도 편하다. 울퉁불퉁한 곳을 고르고 돌계단 옆에 길을 만들어 유모차는 물론 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샛길을 이용해 만들다보니 마을 안길과 산길을 들락날락할 수 있어 마치 제주도 올레길의 내륙판을 보는 듯하다.
◆숨은 진주,서울대공원 산림욕장
과천 서울대공원 안 동물원을 빙 돌아 산림욕장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입장표(성인 3000원,7세 이하 1000원)를 사서 동물원에 들어서면 맨 오른쪽 호주관 뒤편과 왼편 산림전시관에서 산림욕장으로 들어설 수 있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산림욕장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반대편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가,나,다,라' 네 구역으로 나뉜 산림욕장을 순차적으로 걷고 싶다면 호주관 쪽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 구간의 첫 번째 쉼터는 '선녀못이 있는 숲'.서울대공원이 조성되기 전 이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아낙네들이 낮에는 빨래를 하고 밤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목욕을 했던 곳이란다. 지금은 시비를 세워놓고 선녀연못을 재현해놨다. 뒤이어 '자연과 함께하는 숲''얼음골 숲''생각하는 숲''쉬어가는 숲''맨발로 걷는 길''독서하는 숲''밤나무 숲''사귐의 숲''소나무 숲' 등 다양한 테마 공간을 차례로 지나노라면 어느새 맑은 숲의 공기가 폐를 지나 모세혈관까지 자극하는 듯하다.
총 6.9㎞ 거리를 답파하려면 걸음에 따라 2시간30분~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힘들다 싶으면 군데군데 동물원으로 연결되는 샛길로 빠져나와 겨우내 잔뜩 움츠렸다가 기지개를 켜는 캥거루와 원숭이들을 볼 수 있는 건 덤이다. 산림욕장은 연중 내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서울 남부의 허파,청계산서울 시민들이 사랑하는 청계산에서도 특히 인기 있는 관문은 원터골과 옛골이다. 양재동 농협하나로마트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진입하면 원터골이 나온다. 여기에서 출발해 진달래능선을 따라 옥녀봉까지 오르는 길은 약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코스.정자에서 20~30분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다. 이제 막 개나리꽃 봉오리가 나뭇가지에 맺히기 시작했다. 만발한 진달래를 보려면 4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완만한 능선은 봄 기운을 느끼며 숨차지 않을 정도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원터골 입구를 지나쳐 성남시로 넘어가면 옛골이 나온다. 옛골에서 시작해 어둔골이나 철쭉능선을 따라 이수봉으로 방향을 잡으면 정성스레 가꿔놓은 야생화가 눈을 즐겁게 한다. 생태표지판이 친절하게 설치돼 있다. 옛골에서 이수봉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반에서 3시간.
최근 청계산 등 서울 7대 명산과 수도권 걷기여행 코스를 소개한 《북한산 둘레길》(상상출판)의 저자 이승태씨는 "서울시내 웬만한 산은 거의 바위산인 데 비해 청계산은 온전히 숲으로 이뤄졌다"며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산인 데다 군데군데 샘과 정자가 있어 트레킹을 하기 딱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원터골과 옛골 입구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맛집들을 들러보는 것도 걷기 후 누릴 수 있는 재미다. 순두부와 산채나물밥,보리밥,오리구이 등이 봄 나들이객의 입맛을 돋운다.
문혜정/최진석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