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의 통큰 비즈니스…인텔과 손잡고 또 판 바꾼다

KT, 모뎀 필요없는 와이브로시대 열어
클라우드 컴퓨팅도…다양한 상품으로 시장 주도
이석채 KT회장은 26일 미국 샌타클레라에 있는 인텔 본사에서 폴 오텔리니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4세대 이통통신 서비스인 와이브로(초고속 무선 인터넷),클라우드 컴퓨팅에 기반한 데이터센터 구축 등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와 국내 최대 통신사 간의 전략적 제휴다. '아이폰 충격'을 몰고온 주역인 이 회장이 또 한차례 판을 바꾸는 '통큰' 비즈니스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지난해 12월 초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동통신 시장에서 '데이터 폭발(data explosion)'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모뎀 없이 와이브로 쓴다KT와 인텔은 우선 국내 시장에 와이브로 단말기(모뎀)를 별도로 장착하지 않아도 되는 칩세트를 공급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노트북 등에서 와이브로를 이용하려면 USB 단자에 모뎀을 꽂아야만 했다. KT와 인텔은 협력을 통해 칩세트에 신기술을 담아 불편함을 줄이기로 했다. KT는 인텔의 칩세트를 적용하기 위해 국내 와이브로 망의 주파수 대역도 기존 8.75메가헤르츠(㎒)에서 10㎒로 넓혀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제조사들이 인텔의 와이브로 칩세트를 널리 쓸 수 있도록 가격도 적당한 수준에서 조율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몇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와이브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인텔과 표준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며 "KT의 와이브로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T는 인텔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에도 나설 예정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업체들의 서버,저장장치(스토리지),소프트웨어 등을 빌려 쓰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은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관련 데이터를 내려받을 수 있고,데이터를 중복 저장하지 않아도 돼 IT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업계에선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KT의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HP,구글,마이크로소프트,시스코,오라클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며 "KT는 스마트폰과 연계한 서비스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통신 패러다임 확 바꾼다

KT와 인텔의 제휴는 '이석채식(式) 추진력'의 결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통 관료출신인 이 회장이 지난해 3월 KT경영을 맡은 뒤 1년여 만에 성사시킨 굵직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는 이미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 도전,큰 그림을 그리는 기획력 및 실천을 앞세워 통신시장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유선전화,이동통신 등 주력 사업의 매출 감소를 겁내지 않고 다양한 컨버전스(융합) 상품으로 미래의 성장 기반을 닦겠다"고 공언해왔다. 작년 말 아이폰을 출시하고 다양한 스마트폰 요금제를 내놓으며 통신료 인하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달 초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부다비 미디어 서밋'에선 집 밖에서도 무선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전략도 공개했다. 노트북,내비게이션 등을 휴대폰과 연결해 이동통신 망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테더링 서비스'도 KT가 주도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3세대(G) 이동통신 기능을 갖춘 여러 대의 디지털 기기에서 정액 데이터를 나눠 쓸 수 있는 '스마트 셰어링' 상품도 내놓을 예정"이라며 "이번 인텔과의 제휴를 구체화하기 위해 부사장급이 참여하는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회의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