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사업은 돌려주는 것…숫자보다 사람을 봅니다"

美 록펠러 가문 5대손 스티븐 록펠러 리에코홀딩스 최고경영자
무담보 신용대출 받으러 온 중국 여인 '삶의 열정' 못 잊어
자기만의 내면 가치 세워야 나날의 삶 행복해져
미국 '석유왕' 존 록펠러의 5대손이자 록펠러 가문의 투자금융회사인 리에코홀딩스 최고경영자인 스티븐 록펠러 주니어 회장(50).그를 동행취재한 건 행운이었다.

그는 지난 26일 오후 중앙대 특강을 마치고 같은날 밤 10시 숙소인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스위트룸에서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그의 절친한 한국계 미국인 조나단 민욱 메인(미국 이름과 한국이름을 합쳐 부르고 있음 · 리에코홀딩스 사장)이 조나단 사장의 지인 10여명을 부른 '미니 파티'였다. 한국의 사업파트너들과 친목 도모를 위한 가진 모임을 운좋게도 취재할 수 있었다. 지난 25일 새벽 방한해 29일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사업 친구들을 만나고 남산과 경복궁 등 서울관광을 하는 록펠러 회장은 쉰살이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말하는 내내 유쾌한 웃음을 띠는 록펠러 회장을 동행 인터뷰한 소감은 한 마디로 '그는 왕자로 태어났지만 왕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강해져야 행복하다

기자에게 록펠러 회장은 조나단 사장에 대해 "뼛속까지 깊이 믿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조나단 친구가 있어 한국에 사업기회를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록펠러 회장은 "개인적으로 쓸 만한 돈은 충분히 갖고 있다"며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고 강조했다. 동행 취재기간 내내 즐거운 표정으로 '마이크로 크레딧(무담보 소액대출)을 얘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여겨졌다.

동행 인터뷰 중에 기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나이에 비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닭사슴살 요리를 시켰고,기자가 추천한 짬뽕같은 해물라면이 맛있다며 국물을 들이켰다. 식사를 마친 뒤 록펠러 회장은 기자에게 갑자기 명상을 제안했다. 눈을 감고 심호흡를 가다듬기 시작한지 5분쯤 지났을까.

"그거 알아요. 명상을 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 그는 들뜬 표정이었다. 한국에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지만 짧은 기간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래서 감사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26일 밤 한국 비즈니스맨들과 가진 만남은 지금까지 그 어떤 기업가들과의 만남보다 만족스러웠다"며 "미국 뉴욕으로 돌아가는 즉시 감사 이메일을 보낼 계획"이라며 웃었다. 그가 갑자기 명상을 제안한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궁극적인 지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나'와 '내것'에 집중할 때 나온다"며 "스스로 자신만의 내면적인 가치를 정립하고 만족할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선대 존 록펠러의 명언 중 하나가 '외로움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만이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는 문구"라며 "주변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내면에 집중한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아프거나 직장이 없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지요. 그래서 아무탈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

◆권력 · 명예 · 부 세속적 가치는 허무한것1839년 태어나 1937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자들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던 존 록펠러의 정신은 5대손 록펠러 회장에게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그는 "권력,부,명예는 영속적인 가치가 아니다"며 "이들을 좇는 삶은 허무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부자라고 하고 싶은 대로 다 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나요?"라고 반문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명예 등 유명세를 얻게 되면 그 뒤에 숨은 안 좋은 점들이 더 많아요. 무엇보다 소중한 프라이버시를 뺏기게 돼요. 나는 뉴욕 거리를 마음껏 활보해도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죠(크게 웃음).유명해지면 그런 자유마저 누릴 수 없어요. "

◆비즈니스 목적은 사회 환원

취재 과정에서 록펠러 회장이 가장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한 소재는 '마이크로 크레딧(무담보소액대출)'이다. 그는 "2000년대 중반 중국 오지를 방문했을 때 마이크로 크레딧을 받기 위해 다가오는 한 중국 여인의 눈망울에서 삶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며 "아직도 그 여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기억했다. 그는 "쓸 만큼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며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록펠러 회장의 비즈니스도 사실은 다른 기업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최고경영자로 있는 리에코홀딩스는 잠재력은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기업들을 찾아 투자한다. 투자 대상을 고를 때는 겉으로 보이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을 적용한다고 했다. 그는 "숫자를 믿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학교에서 금융을 전공했고 이미 많은 금융 이론들을 알고 있지만 실제 사업을 할 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비즈니스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죠."

◆가족이 그를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

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가족'을 꼽았다. 취재 과정에 10살된 딸이 '보고싶다'며 보낸 이메일을 블랙베리 핸드폰에서 확인하곤 만면에 미소를 띠며 즐거워했다. 27년전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둔 그는 "지금까지 아내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며 "가정일을 돌보는 아내는 내면적으로 강하고 현명한 여성"이라고 칭찬했다. 중국,아시아를 방문하는 이번 일정 전에는 가족들과 버진아일랜드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했던 최고의 순간은 신앙을 체험한 시간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도 소중한 가치라고 했다. 록펠러 회장은 "때론 지나치게 먼 미래까지 생각하며 걱정한다"며 "지금 현재 주어진 오늘에 충실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자와 대화하는 순간도 즐기려고 노력했다. 답답하게 쳐진 호텔 스위트룸의 커튼을 걷고 서울의 야경을 즐겼고,음악을 틀어 귀를 즐겁게 했다. 즐거운 농담을 건넸고,장난기 어린 호탕한 웃음으로 일관했다. 가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새로운 화제를 던지기도 했다.

즉석에서 시를 지어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기도 했다. "유리창이 저 넘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해 열려 있지만 결국 두 세계는 똑같은 사랑을 추구한다. (And then the windows opened for a glimpse of another world beyond,also searching for the same love.)" 종이 위에 자필로 적어 준 이 시구에 대해 그는 유리창이 안쪽과 바깥쪽의 세상을 구분 짓고 있지만 결국 이 두 세계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같다는 의미라고 친절하게 해석해줬다.

◆왕자로 태어났지만 왕으로 살지 않는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왕자'로 태어난 그가 '왕'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알게됐다. '내가 누구'라는 권위 의식도 없었고 '이건 안돼'라는 강압도 없었다. 자신이 남긴 음식은 스스로 치웠고 남들을 배려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물었다. 세계 최대 재벌가의 자손을 만났지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엔 평소 알던 이웃을 만난 듯한 편한함을 느꼈다. 자신이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의식은 이런 작은 배려들이 쌓여서 형성된 듯 싶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록펠러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행복해 보였을까'라고 자문해봤다. 대답은 "그렇다"다. 그는 존 록펠러의 5대손이 아니라 '인간 스티븐 록펠러'로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깨닫고 있고,깨달은 바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듯 보였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