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글로벌 포럼 2010] "후계자 김정은 파산한 국가 물려받을 것…사회적 동요 시작됐다"

화폐개혁 실패 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은 파산한 국가를 물려받을 수도 있다. "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연구센터 소장은 31일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주최한 '북한경제 글로벌 포럼 2010' 세션 1의 주제발표자로 나서 이같이 내다봤다. 스나이더 소장은 "화폐개혁은 시장 기능을 멈추게 해 물자 공급을 줄였고,인플레이션을 촉발해 정부가 의도한 물가 안정을 이루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화폐개혁의 동기는 시장경제가 확대되는 것을 막고 중앙경제체제를 강화해 후계자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작 김정은은 주민들의 원성만 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화폐개혁 절반의 성공 vs 완전한 실패

화폐개혁을 '완전한 실패'로 보느냐 '절반의 성공'으로 보느냐에서 견해가 갈렸다. 스나이더 소장과 주펑 베이징대 교수,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북한의 화폐개혁이 애초 동기와 목적부터 잘못된 실패작이라고 진단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북한이 이례적으로 주민들에게 화폐개혁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총책임자였던 박남기를 총살해 민심을 달래고 있는 것이 실패의 증거"라고 진단했다. 그는 "화폐개혁은 1960년대 계획경제 · 배급제로의 복귀를 시도한 것"이라며 "그러나 시장 구성원들의 부(富)를 몰수해 반발을 불렀고,종합시장 폐쇄로 물품 공급이 부족해지고 작은 단위 화폐를 마련하지 않아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고 설명했다. "화폐개혁은 실패가 자명하다"고 잘라 말한 주 교수는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병연 교수도 "북한은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을 잡기 어렵다는 기초적인 경제학 지식도 없다"고 비판했다.

절반의 성공을 강조하는 입장은 정치 · 사회적인 효과에 주목했다. 김미덕 일본 다마대 경영정보학부 교수는 "화폐개혁이 경제적으론 실패했을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민주주의가 싹트게 하는 자각 효과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북한은 2005년부터 화폐개혁을 준비했다"며 "고난의 행군 시기에 비해 국내총생산(GDP)이 늘었고 화폐개혁 후 인플레이션율도 차츰 떨어지고 있어 지금 실패라고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덧붙였다.

◆통제권 강화하려다 되레 약화스나이더 소장은 "화폐개혁은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며 "시장을 대체할 만한 국영 배급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병연 교수는 "시장의 힘을 과소평가한 이번 조치는 큰 실수"라며 "시장에서 뇌물을 받거나 무역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시장화된 관료들의 반발로 엘리트 집단 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간 북한은 경제적 해체만 경험했지만 이번 화폐개혁은 정치적 해체까지 불러오고 있다"고 해석했다.

주펑 교수도 "그동안 북한 주민 60%가 암시장 거래로 생계를 꾸렸다"며 "북한은 화폐개혁을 통해 계획경제와 암시장 거래를 하나로 통제하려 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북한은 모든 문제를 미국 탓으로 돌렸으나 이번 개혁으로 주민들이 지도자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며 "사회적 동요가 일고 있다"고 진단했다.

◆체제 붕괴 가능성토론자들은 모두 '북한의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동의했지만 붕괴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조기 붕괴론을 주장한 주 교수는 "화폐개혁 실패만으로 체제 붕괴가 이뤄지지는 않겠지만,이번 실패와 침체된 교역 상황 등은 분명히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몇 달 내에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붕괴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현재 북한 정권은 김정일 지지자들로 구성돼 있어 김정일이 없을 때 정권의 방향을 가늠하기가 힘들다"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북한 경제의 목은 중국이 쥐고 있다"

이날 토론 말미에는 중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상만 중앙대 교수는 "북한 경제 전망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변수는 북 · 중 관계"라고 말했다. 그는"북한의 대중 무역적자가 2007년 8억달러에서 2008년 12억달러로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갚을 방법은 밀수나 미사일 판매뿐"이라며 중국의 태도에 따라 북한 경제 향방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도 "북한의 목은 중국이 쥐고 있다"며 "2월 초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해 100억달러 원조를 약속하고 지금은 북한을 살릴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모순된 태도를 지적했다. 주 교수는 이에 대해 "중국은 북한 경제에 혼란을 초래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북한에 영향을 미칠 역량이 있지만 조정자의 역할에 머무르길 원한다"고 답했다.

이상은/심성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