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위기 상조업체 47곳…한푼도 못받을수도

보람상조 해약 속출…'상조약관' 뜯어보니
국내 최대 상조회사인 보람상조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다음 날인 31일.부산 동구 보람상조 부산본부 사무실은 오전부터 상황을 문의하거나 해약을 하려는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직원들은 밀려드는 고객과 상담하느라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다른 업체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울에 있는 H사 관계자는 "원금 환급을 요청하는 고객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약해도 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복잡하게 돼 있는 약관 때문이다. 상조업계의 약관에는 대개 월 불입금이 3만원인 경우 불입횟수가 15회 이하이면 한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돼 있다. 부산시 남구 우암동에서 온 한 고객은 "한 달에 3만원짜리 10년 상조상품에 가입해 19번에 걸쳐 57만원을 넣었는데 해약하니 1만7000원가량만 4월6일 준다고 하니 가슴이 터질 지경"이라며 답답해했다. 보람상조 사건이 불거진 이후 해약과 환급을 둘러싸고 고객과 상조회사 간 다툼이 많아지는 이유다. 보람상조의 경우 월 3만원씩 120회 불입하는 360만원짜리 상품의 경우 완납하면 291만6000원을 돌려받지만 120만원을 넣으면 79만8000원,48만원을 넣으면 1만7000원밖에 받지 못한다.

다른 업체의 고객들은 불입금액과 약관에 상관없이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상조사들이 적립금을 거의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 말 기준으로 상조업체 파산 시 고객이 불입금을 전혀 돌려받을 수 없는 업체가 47개,회원수만 2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이 심하다는 얘기다. 이들 회사는 대개 신규고객이 납입하는 돈에만 의지해 기존 고객의 장례 등을 치르는 '돌려막기'를 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고객들은 해약에 관한 약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계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람상조 가입자인 김모씨(여 · 69)는 "2006년 8월 동네 노인들이 모여있는 곳에 영업사원이 와서 가입을 권유했다"며 "설명을 듣긴 했는데 잘 생각도 안 나고 (글을 잘 몰라) 다른 할머니가 대신 계약서에 사인해 줬다"고 말했다.

보험사 등이 약관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경우 고객의 피해는 구제되는 게 판례다. 공정위 관계자는 "약관의 내용이 부실하거나 고객에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 과태료 부과 등 제재가 가해진다"면서 "소송에서도 고객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동구 동국대 생사의례학과 교수는 "보험은 오랜 역사가 쌓이면서 수익모델이 확립됐는데 상조는 한국에 1980년대에야 도입돼 수익모델이 확립되지 않았다"며 "일부 업체들이 수익성은 도외시한 채 당장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저가로 고객을 끌어들였고 모은 돈을 부동산 투자에 써 적립금이 전체 납입금의 30%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일본의 경우는 1970년대부터 의무 적립금이 50%였으며 상조회사들끼리 자체적으로 10%를 더 적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조회사들의 부실이 커진 것은 저인망식 '길거리 마케팅'과 과다한 모집인 인센티브,출혈광고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상조업체 관계자는 "100만원짜리 상품을 따온 영업사원은 인센티브로 10% 정도를 받는다"며 "이것저것 제하면 적립금을 쌓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임도원/임현우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