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기업에 위기 아닌 때는 없다

어느 곳도 내일의 생존 장담못해
없는 위기도 만들어내 혁신해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복귀가 갖는 의미는 AP통신의 표현처럼 "한국 기업의 아이콘이 돌아왔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이 회장이 세계시장의 3류에 불과했던 기업을 어떻게 혁신하고 경쟁력을 배가시켜 글로벌 1등 전자기업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직접 입증해 보인 우리나라 경영 리더십의 상징임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그 키워드는 '위기경영'이다. 이 회장의 복귀 일성 또한 위기론이었다.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도 10년 뒤 사라질지 모른다"는 말에 모든 것이 녹아 있다. 그에 있어서 가장 절박한 위기상황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을 때'인 것이다. 물론 그의 위기론이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얘기도 많다. 더구나 이 회장 복귀가 도덕적 잣대로 평가될 일이 아닌데도 논란이 빚어지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그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2년 전 그가 일선에서 퇴진했지만 대주주로서 그룹을 장악하고 의사결정에 관여한 '보이지 않는 손'의 힘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주목되는 것은 그의 위기에 대한 언급,그 자체가 늘 반전의 모멘텀이었고 환골탈태(換骨奪胎) 개혁의 시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1993년 세계 일류에 뒤진 삼성 제품들을 일일이 망치로 내려쳐 부숴버린 뒤 "모든 제품을 새로 만들라.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주창했을 때,불량 휴대폰 등 15만대의 제품을 구미공장 마당에 쌓아놓고 불태울 때 그랬다. 삼성이 일본 소니를 앞질렀던 2002년 "5년,10년 뒤 무엇으로 먹고 살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면서 계열사 사장들을 몰아세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이 또 어떻게 변신할지 세계의 경쟁기업들이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시대,글로벌 일류기업 도요타마저 한순간에 추락하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에나 위기가 아닌 때는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실제 위기가 닥쳐온 그 순간에 대응하려다가는 이미 늦게 된다. 항상 위기의식으로 무장하고 이를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면 없는 위기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조직구성원들의 인식 공유를 이끌어내고,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위기경영의 요체는 위기를 맞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대비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삼는 데 있다. 삼성이 다시 이 회장의 리더십을 복원한 의미도 그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꿔 다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삼성이 도전해야 할 목표,가야 할 길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다. 글로벌 시장 고객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아이콘 브랜드(icon brand)'로서의 삼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삼성 경쟁력의 원천과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람과 제품 · 경영시스템,즉 3P(Person,Product,Process)부터 혁신하는 것이 첫걸음일 것이다. 창업 이래 오늘의 삼성이 있게 했고 미래를 담보할 창의와 도전,개척의 정체성과 가치를 되살리고 재정립하는 것이 그 방향임은 물론이다.

한때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인류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은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제국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실제 몽골제국은 안주(安住)에 취해 유목민의 정체성인 개척과 정복정신을 상실하고 핵심역량이었던 전쟁의 기술을 잃으면서 급속한 붕괴의 길을 걸었다. 어느 기업이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순간이 쇠퇴의 시발점이다. GM이 그랬고,도요타의 추락도 마찬가지다. 삼성마저 당장 내일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는 마당에 우리나라 어느 기업이 예외일 수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새로 시작할 때다.

추창근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