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가공 匠人 윤영근 윤진 회장 "원피 냄새 역겹다고? 내겐 향수처럼 달콤해요"


반월공단 끝자락에 있는 반월염색단지 한쪽 끝 야산 밑에 자리잡은 윤진산업.이 공장 안에 들어서면 수십명의 종업원들이 원피를 가공하느라 분주하다.

지하창고에선 시애틀이나 토론토 코펜하겐 등지에서 실려온 원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밍크 여우 등이 담긴 박스를 열면 수백마리분의 '가공안된 원피(raw skin)'가 가득 담겨 있다. 이들은 무려 70가지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옷을 만들 수 있는 '산뜻한 원피'로 재탄생한다. 이 공장을 수십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돌보는 할아버지가 있다. 바로 윤영근 윤진 회장(81)이다. 윤진(YOONJIN)은 원피를 가공하고 염색하는 윤진산업,모피 원자재를 파는 윤진모피,모피의류를 만들어 판매하는 윤진패션 등 3개사로 이뤄진 작은 그룹이다. 이들 3사의 직원은 약 170명,연매출은 200억원 수준이다. 그는 50년 가까이 모피산업에 종사해왔고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하게 일하고 있는 은발의 '청년기업인'이다.

"내레 피양(평양)에서 내려와 수십년 간 모피 분야에서 일해온 노동자니끼니 시방도 거저 9시에 출근해 저녁까지 공장에서 일하디요. "

월남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투박한 평양 사투리는 여전하다. 오랫동안 종사하다보니 남들이 역겹다고 하는 원피 냄새가 "향수처럼 달콤하다"고 말한다. 그는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보통고급중학교와 국학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6 · 25전쟁 중 입대해 10년 동안 군생활을 하고 대위로 예편한 뒤 1963년 들어간 직장이 진도였다. 주로 서울 가리봉동 공장에서 원피를 드레싱(dressing)하는 일을 배웠다. 모피의류를 만드는 일은 무척 까다롭다. 물에 불리고 말린 뒤 갈고 염색하는 공정을 거친다. 커다란 원통형 나무통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약품과 원피를 넣고 프로펠러로 휘저어 불린다. 그 뒤 원피의 양쪽 끝을 손으로 잡고 그라인더에 대고 얇게 깎아낸다. 털 안쪽에 붙은 가죽이 너무 두꺼우면 옷이 무겁고 너무 얇게 깎으면 자칫 구멍이 날 수도 있다.

윤 회장은 진도에서 17년간 근무하면서 주로 공장에서 일했다. 1980년 공장장으로 퇴직한 뒤 어려움을 겪던 윤진모피를 인수해 키웠다.

윤진이란 브랜드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원피만 공급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피의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피 가공이고,윤진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 국내에는 100여개의 모피의류 봉제업체가 서울 독산동,신림동 등에 퍼져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윤진에서 원피를 사다 쓴다. 전체 소요 물량의 30~40%에 달한다. 윤 회장은 윤진패션을 설립해 모피의류 사업에 뛰어들었고 최근에는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명품의류 대접을 받고 있다. 윤 회장은 "고급 원피 가공은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등이 선진국이지만 이제는 한국 기술이 이들 못지않다"며 "이를 바탕으로 고급 모피의류 생산국의 명맥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반월=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