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심리전·교란·매복…'손자병법' 뺨치는 동물의 사냥법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게임 | 마르쿠스 베네만 지음 |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334쪽 | 1만4800원

암컷의 향수로 유혹한 다음
올가미로 먹이 잡는 볼라스거미

북방족제비, 구르고 공중제비
"저 녀석 미쳤나?" 의심할때 덥썩

토끼는 자기보다 몸집도 작고 걸음도 느린 북방족제비를 무시한다. 족제비가 저쪽에서 공격해 온다 싶으면 가볍게 깡충깡충 뛰어 얼른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방족제비는 멀리서 토끼가 보이면 일부러 이리저리 뜀을 뛰고 구르고,공중제비를 선보이며 춤을 춘다.

"저 녀석이 왜 저러지? 맨날 우리를 쫓아다니며 헛수고 하더니 드디어 미쳤군"하며 토끼들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족제비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토끼의 목덜미를 덥석 문다. 일부러 허점을 보여 토끼를 방심하게 한 다음 잽싸게 낚아채는 것이다. 《기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영문학 · 역사학 · 생물학을 전공한 독일의 기자 출신 전문작가가 쓴 동물들의 쟁투기다. 그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서로 죽여야 하는 동물들의 독특하고 다양한 필살기를 통해 생존을 위한 전략을 발견하고 이를 인간의 삶에 비춰본다.

남미의 열대우림에 사는 펩시스말벌은 땅 속의 아늑한 구멍에서 사는 타란툴라 암거미와 결투를 벌여 그의 연한 복부에 독침을 놓는다. 펩시스말벌의 독은 거미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혈압을 떨어뜨려 동면상태처럼 몽롱하게 만든다. 그러면 말벌은 다시 거미를 구멍으로 끌고 가 그의 배에 알을 낳고 구멍을 메운다. 거미가 마취상태로 지내는 동안 말벌의 알은 유충이 되고 거미의 체액을 빨아 먹으며 성충이 된다.

또 조류인 해오라기는 관상용으로 '오냐오냐'하며 길러지다가 미모가 달려 일반 연못으로 쫓겨난 잉어를 노리며 연못에 빵 조각을 던진다. 사육사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는데 익숙한 잉어는 의심 없이 빵조각으로 몰려들고,해오라기는 이때 잉어를 낚아챈다. 상대의 '나약한 욕망'을 노리는 전략이다. 솔개는 산불이 난 현장을 발견하면 불길이 남은 나뭇조각을 집어들어 마른 풀 위에 떨어뜨린다. 풀밭에서 불길이 솟으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주머니쥐나 도마뱀을 잽싸게 잡아챈다. 그 수법이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 못지 않다. 목숨을 건 동물들의 생존전략이 이렇게 치밀했나 새삼 놀라게 된다.

암컷의 향수로 희생자를 유혹한 다음 올가미로 먹잇감을 잡는 볼라스거미,가늘고 긴 가운데 손가락으로 깊은 구멍 속의 나무좀을 잡아먹는 아이아이 원숭이, 곤충 · 들쥐 등 9마리의 동물을 연쇄 살육해 가시덤불에 걸어놓고 궂은날에 대비하는 붉은등때까치, 딱총새우의 강력한 실탄 사격,사이코 킬러와 은밀한 살육자들….

인간세계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살육의 방법과 장면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도 저자는 "동물들에게 살육의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면죄부를 준다. 동물들은 순전히 본능을 좇아 행동하므로 그 행동에 책임이 없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몇몇 예외를 빼면 동물들은 먹이를 얻거나,생명을 지키거나,경쟁을 뚫고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만 상대를 죽인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인간 사회의 잔혹한 풍경은 얼마나 잔인하고 악의적인가. 죽고 죽이는 살벌한 현장을 유머와 재치를 섞어 묘사한 저자의 솜씨가 빼어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