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국회 재정위의 이상한 침묵

"빚은 내되 채무액은 늘리지 말라고?"

최근 만난 기획재정부 예산실 관계자가 무상급식과 관련해 여 · 야의 경쟁적인 당론 도입을 놓고 한 말이다.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재정건전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나라 살림 걱정은 도맡아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예산이 들어가는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 초 · 중등학교의 무상급식에 대해 한나라당은 점진적 확대 시행안을 내놓으면서 취학 전 아동의 무상보육까지 내세우고 있으며,민주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은 초 · 중등 의무교육기간에 무상급식을 당연히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먹을 것이 풍족한 시절에 점심 한 끼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빈곤층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한다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정부 재정으로 아동 보육비용을 지원함으로써 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저출산 · 고령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점이다. 정부의 예산투입은 제로섬 게임이다. 한정된 예산의 캡(Cap) 안에서는 한쪽이 늘어나면 그만큼 다른 한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과 같은 공짜 점심을 늘리다보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말대로 그 부담은 동시대의 다른 누군가가 지거나,그렇지 않으면 결국 미래 세대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1일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재정제도 개선방안'를 주제로 개최한 공청회에서도 이 같은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김정완 대진대학교 교수는 "정치인들은 득표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정을 활용한 정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며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선 기획재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에 계류 중인 국가재정법 개정안 중 정부 재정건전성 강화를 요구하는 법안은 8개에 달한다. 공공기관의 부채관리계획을 국회에 보고토록 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사후 평가를 강화하자는 등의 강력한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 중에 국회의 포퓰리즘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직 없다. 왜 이들은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그 정도로 다양한 법안을 발의할 정도면 나름대로 재정문제에 대한 식견도 상당할 텐데 말이다.

박신영 정치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