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오스카의 저주

'호사다마'라는 말의 출처는 중국 청대(淸代)의 명저 '홍루몽'(조설근)으로 전해진다. 관련 대목은 이렇다. "속세에도 즐거운 일이 있지만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미중부족 호사다마(美中不足 好事多魔:옥에도 티가 있고 좋은 일엔 탈도 많다)'란 여덟 자는 이어져 있으니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생기는 법이다. "

같은 맥락에서 대길(大吉)은 대흉(大凶)과 통한다는 얘기도 있다. 동서고금이 다를 게 없는지 할리우드 배우들의 염원인 오스카가 저주를 부른다고 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들이 연인 내지 남편과 헤어진다는 게 그것이다. 기네스 팰트로,줄리아 로버츠,할리 베리,샤를리즈 테론,힐러리 스웽크,리즈 위더스푼,케이트 윈슬렛 등 쟁쟁한 여배우들이 죄다 이 상을 받은 뒤 결별의 아픔을 겪었는데 올해 수상자 산드라 블록 역시 기뻐할 틈도 없이 터져나온 남편의 외도 사실에 이혼을 결심했다는 소식이다.

제아무리 유명한 배우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은 쓰라릴 수밖에 없다. "남편의 스캔들로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임을 절감했다"는 걸 보면 블록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생애 최고의 영예가 파경을 가져오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수상에 따른 몸값 및 인기 상승이 오만을 불러 상대에게 서운함 내지 거리를 느끼게 했을 수도 있고 자격지심을 느낀 상대가 한눈을 팔았을 수도 있다. 상을 받은 뒤 바빠진 나머지 상대를 외롭게 만든 결과일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에선 "마초 형 남편이 성공한 아내에 가려지는 걸 참지 못해서"라는 설과 "배우자가 집을 자주 비우는 고소득층 가정에 흔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팽팽하게 맞선다고 한다. 어쩌면 두 가지가 혼합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남녀 관계엔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중 첫째가 자존심이라지만 그럴 수 있는 건 사랑을 갓 시작했을 때뿐 불같은 열정이 식고 자아가 돌아오면 문제는 달라진다. 누구나 상대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존중을 받고 싶어하는 까닭이다.

연인과 부부도 한쪽만 잘 나가면 사이가 벌어지기 십상이니 남남끼린 오죽하랴.사람은 산이 아니라 돌멩이에 걸려 넘어진다. 승승장구할수록 가족과 주위 모두 잘 돌아보고 배려하며 조심스레 처신할 일이다. 마(魔)는 오스카에만 끼는 게 아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