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길을 걸으며 만난 스승들

강원도 숲길 살려내는 고향사람들
자연과 동화하는 삶의 가치 일깨워
사람이 살다보면 가끔 팔자에 없는 일을 할 때가 있다. 직업이 글을 쓰는 사람인데,지난해부터 고향 강원도에 주말마다 내려가 그곳에 '바우길'이라는 이름으로 10개의 코스 총연장 150㎞의 걷는 길을 개척한 일 역시 내겐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10여년 전에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과 함께 대관령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옛길을 굽이굽이 걸어서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란 제목의 소설 한 편을 쓴 다음부터 고향에 그런 걷는 길을 개척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심심치않게 받았다.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피했던 것을 지난해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 역시 아주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만 쓰지 말고 실제 고향에 그대로 남아 있는 옛길을 살려 고향 사람들 모두 좋아하고,또 그 길에 이야기를 담아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역시 작가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아니냐는 말에 바로 옛길 탐사에 착수했다. 글눈만 밝지 길눈이 어두운 작가를 위해 옛길 탐사를 앞에 나서서 이끌어줄 고향의 길 전문가도 만났다. 그는 마치 고산자 김정호 같은 사람이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고 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걸으면 거기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인데,내게 길은 인생의 또 다른 학교와도 같은 곳이었다. 50년을 걸어왔는데도 산길을 걷는 법,들길을 걷는 법,오르막길을 걷는 법,내리막길을 걷는 법을 그야말로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우며 길을 개척했다.

제주 올레길의 소문난 성공 때문인지 애초 내가 기획하고 개척해 나가는 길에 이상한 훼방꾼들이 달려들기도 했다. 그들은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며 우리가 개척하고 탐사하는 길 중간중간에 엉뚱한 길이름의 간판을 붙여나갔다. 그러자 부모형제들까지 "너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왜 지역의 그런 사람들과 다투냐며 모든 것 그만두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가 작가로 글이나 열심히 쓰라"고 충고했다. 그때에도 길 위의 스승들이 중심을 잡아주었다. 싸움이 싫어서,또 얼굴에 흙을 묻히기 싫어 물러서면 내 옷과 얼굴은 깨끗해질지 몰라도 장구한 세월 동안 자연 속에 있어온 저 길들이 공사판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할 오솔길에 방부목으로 계단을 설치해 오히려 걷기 더 불편하게 만들고,필요하지도 않은 전망대를 설치하고 아무 곳에나 쉼터를 만드는 것은 걷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면에 길을 만드는 자와 공사를 하는 자들의 또다른 경제성(?)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었다. 책상 밖의 세상 이치가 그렇다는 것도 길 위에서 처음 배운 셈이었다.

우리가 길을 걷는 것은 그냥 단순히 걸어서 이동하는 의미만이 아니라,그래서 건강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걷는 동안 한가지 생각을 골똘히 할 수 있어 사유의 폭을 넓게 하고 또 깊게 한다는 것도 길 위에서 배웠다. 오래 걷는 것이 건강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또 의지의 인내력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인내력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는 이 멋진 말도 함께 옛길을 걷는 고향 후배가 가르쳐주었다.

먼 거리를 차를 타지 않고 한발두발 걸는 일은 기본적으로 지루하다. 이 지루함을 사고의 유희처럼 한 가지의 생각으로 이겨나가는 것,그러면서 길의 정령과 이야기하고 길옆에 선 나무들의 정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 역시 길 위의 스승들이 가르쳐주었다. 산길을 걷고 옛길을 걷고 들길을 걸으면 길 위에서 만나는 작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예전에 책상 앞에서의 삶이 전부였을 때는 달력으로만 시간이 가는 줄 알았는데 길을 걸으면서 자연속으로 흘러가는 시간 역시 나와 함께 그 길을 오래 걸어가는 친구인 것을 깨달았다.

이순원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