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판데노믹스 시대의 증시

600억원 규모의 주가 조작을 소재로 한 영화 '작전'에선 증권시장의 정보 전염속도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주인공이 주식 투자로 번번이 깨지는 친구에게 귀띔해 준 작전 종목이 불과 몇 분 만에 수백명에게 전파된 것이다. "너만 알고 있어" 식의 은밀한 정보와 루머도 실은 2의 제곱으로 전파된다. 한 사람에게 알려준 정보가 2,4,…,64,128명으로 확산된다는 얘기다.

영화에선 전화만으로도 놀라운 전파력을 보였지만 인터넷 메신저에다 스마트폰,트위터 등 네트워크의 진화가 가속화한 요즘의 정보 전염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단 한 명이 수천,수만명에게 정보를 옮길 수 있고 그 범위는 국경을 넘어 전 지구로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 얼마 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한 노벨 평화상 후보 237명 가운데 '인터넷'이 포함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년 이란,티베트의 시위사태가 실시간으로 전해지면서 인터넷 미디어의 위력과 평화적 활용 가능성을 확인케 했기 때문이다.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산업화 과정에서 단절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복원해 주지 않을까 하는 환상마저 갖게 한다. 65억 인류의 절반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면서 세상이 바뀌는 '티핑 포인트'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네트워크의 세계화로 인해 과거 철석같던 진리마저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20세기까지의 경제학이 '선택'과 '한계'란 프레임 아래 성립됐다면,지금은 '한계'를 뛰어넘는 '네트워크 효과'에서 더 큰 인사이트를 얻는다. 네트워크를 통해 전염병(pandemic)처럼 번지는 경제효과를 지칭하는 '판데노믹스(Pandenomics · 전염경제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트워크의 세계에선 물리적 제약이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무한한 기회와 대박 상품,신시장,새로운 부(富)를 만들어 낸다. 아이폰이 뜨자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애플리케이션 산업이 형성되고 심지어 케이스를 만드는 회사까지 덩달아 각광받는다. 인터넷 인구 세계 10위,광대역 인터넷망 보급률 세계 1위인 한국은 판데노믹스의 신천지로 부상할 인프라를 갖춘 셈이다. 시시각각 돈이 움직이는 증시는 판데노믹스로 인해 더 드라마틱해졌다. 글로벌 증시는 24시간 돌아가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름 모를 코스닥 종목에 몰빵했어도 리먼 사태부터 두바이 몰락,그리스 재정위기,곡물 주산지인 호주 · 인도 · 브라질의 기후까지 챙겨야 할 판이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특정 지역 · 국가에만 한정된 이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도 '리스크의 글로벌화'를 피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구촌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거르지 않고 전해지다 보니 시장은 늘 과매수 · 과매도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진위를 알 수 없는 루머까지 더해져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 그러니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점을 돌파해도 불안하고,조정에 들어가도 불안하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선택할 정보가 많을수록 거짓 예언가들이 판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어떤 첨단 투자모형보다 우직하리만치 펀더멘털에 치중한 워런 버핏식 가치투자가 훨씬 성과가 높다는 점은 판데노믹스 시대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오형규 증권부장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