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혁신한 K마트 파산한 까닭은…

LG경제硏 '기업 위기와 오해'
미국의 한 유통업체는 90년대 중반부터 혁신 활동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점포마다 판매시점관리(POS) 단말기를 설치해 재고량을 신속하게 파악했고,판매상품의 75%를 대량구매해 비용을 절감했다. 크리스마스 · 핼러윈 시즌 판매량을 60% 늘렸다.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상품 관리를 개선하고 2억4000만달러를 아꼈다. 이 회사는 이를 통해 유통업체 효율성을 나타내는 주요 척도인 재고회전율을 1994년 3.45에서 2002년 4.56으로 8년간 32% 개선했다.

이 회사의 이름은 K마트다. 역설적이지만 K마트는 재고회전율이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2002년 파산 신청을 했다. 왜 열심히 혁신한 기업이 파산하는 걸까. 김범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6일 '위기에 빠진 기업에 대한 오해'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해당 기업이 혁신을 게을리했거나,고객의 수요를 파악하지 못했거나,탁월한 전략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K마트가 파산한 것은 혁신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경쟁사인 월마트가 더 빠른 속도로 혁신했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같은 기간 재고회전율을 5.14에서 8.08로 63% 향상시켰다는 것.

현재의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에 충실해야 한다는 명제도 기업들을 오판으로 이끈다. 김 연구위원은 "제록스 복사기는 '전 세계에서 5000대 정도 밖에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들었고,바비인형에 대한 수요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부정적으로 답했다"고 전했다. 두 아이템은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해당 분야의 1등 기업이 되거나 사업을 꾸준히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경우에도 '함정'은 있다. 리먼브러더스는 1994년 상장 후 2008년 1분기까지 단 한 차례도 손실을 내지 않았다. 리먼은 2007년 이후 서브프라임 취급기관들이 사업규모를 축소할 때 '시장이 나빠져 경쟁업체 수가 줄어들면 기회가 늘어난다'며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2001년 9 · 11 사태 후 같은 전략으로 최고 수익을 올린 경험을 떠올린 것이다. 리먼은 2008년 9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김 연구위원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인 만큼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