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책 읽는' 의원들

"양해해 주신다면 일자리 창출 대책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기획조정실장으로 하여금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

일자리만들기특별위원회 4차 회의가 열린 6일.서울 여의도 국회에선 등장하는 인물만 다를 뿐,똑같은 장면이 여섯 차례나 지루하게 연출됐다. 각 부처의 장(長)들이 나와 일자리창출을 위한 업무계획을 읽은 뒤,의원들의 양해(?) 아래 차관 혹은 실장들이 보고서의 전문을 읽어내려가는 장면이다.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6개 부처 간부들은 마치 드라마의 재연 배우 같다. 3시간짜리 회의의 80분 이상이 보고서를 줄줄 읽는 것으로 허비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알맹이가 나올 리 없었다. 일자리특위는 그동안 이런 식으로 세 차례나 회의를 열었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2월10일 일자리특위 구성에 합의했지만 1차 회의는 한 달여를 넘겨 지난달 18일에 겨우 열렸다. 2~3차 회의가 열렸던 지난 29~30일에도 기획재정부와 노동부를 비롯한 13개부처의 공무원들이 보고서를 읊는 것으로 끝났다.

문제는 미리 배포된 자료조차 읽지 않고 오는 의원들이 많다는 점.통상 특위뿐 아니라 상임위원회가 열릴 때도 정부부처의 보고서는 회의가 개최되는 날로부터 2~3일 전에 각 국회의원실로 도착한다. 보고서를 미리 보내 국회의원들이 '예습'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회의 당일에 좀더 생산적인 토론을 하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동안 특위나 상임위가 열렸을 때 단 한번도 본론으로 직행한 적이 없다. 공무원들이 보고서를 읽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토론과 질의가 시작됐다. 정부가 고용전략회의를 열고 국회가 일자리특위를 구성한 것은 올 들어 민간부문의 고용시장이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을 통한 공공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생긴 공백을 하루빨리 메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원들에게 장황하게 자료를 읽어주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솔루션이 나올 것 같지가 않다. 가뜩이나 '취업애로계층''사실상 실업자' 등 이 나라 청년들의 일자리 고민이 커져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국회의 '책 읽는 의원'들의 모습이 한가해 보인다.

박신영 정치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