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수천만명 신대륙 원주민이 10분의 1로…추악한 승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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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아노,거울 너머의 역사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 조구호 옮김 | 책보세 | 568쪽 | 2만7000원신대륙 발견 후 급증했던 노예 상인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유를 사랑했다. 자신들이 소유한 배 중 가장 훌륭한 배에는 '볼테르'나 '루소' 같은 자유사상가 이름을 붙였다. '영혼''자비''선지자 다윗''예수' 같은 종교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런 배들은 흑인 노예들을 싣고 입항할 때 굳이 뱃고동을 울릴 필요가 없었다. 노예선은 멀리서부터 지독한 악취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노예들은 목과 목,팔목과 팔목끼리 서로 쇠사슬로 연결돼 기다란 철봉에 꿰어진 채 작은 틈도 허비하지 않도록 최대한 밀착해 함께 포개져 드러누웠다. 그들은 밤이건,낮이건 움직일 수 없었다. 동료의 몸 위에 대소변을 봤다. 많은 노예가 대양을 건너는 동안 죽어갔다. 경비원들은 매일 아침 노예의 시체들을 바다에 던졌다.
《갈레아노,거울 너머의 역사》는 승자들의 역사를 뒤집어 읽어낸다. 정사에는 철저히 무시됐던 노예 상인의 야만성을 폭로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신대륙 원주민들에게 재앙이었다. 수천만 명에 달하던 원주민은 불과 100년 동안 학살과 전염병으로 수백만명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우루과이의 저널리스트인 저자 갈레아노는 감춰진 세계사 600여 편을 모아 인식의 지평을 확대한다. 권력자 지배자 약탈자 앞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던 약자와 실패자들의 역사를 복원시킨다. 박물관 안에 감금된 역사를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피라미드의 신전을 세우느라 돌에 깔린 사내들,서양인의 총포 앞에서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남반구 원주민들,남성 지배 사회에서 마녀로 취급받은 여성들의 삶이 살아난다. 이로써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의미 있는 것'들로 되살려놓는다. 가령 섹스 파업을 다룬 아리스토파네스의 고전 연극도 새롭게 해석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일 때 여자들이 섹스를 거부하자 남자들이 전쟁을 중단했다는 우화였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여자들에게는 절대로 그럴 권리가 없었다고 얘기한다. 여자들은 오로지 남자들의 명령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무대 위에 설 자격조차 없어 여장 남자들이 여성 역을 연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예찬론도 꼬집는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을 포획하는 전쟁은 정당하다. 이 사회에는 자유인과 노예라는 서로 다른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란 외침은 과연 아리스토텔레스가 '인류의 스승'인지 반추하게 만든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