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함께 하는 1기업 1나눔] (34) 한국아저씨들이 되찾아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

(34) 두산 '베트남 의료봉사'
의료봉사로 심은 '사랑씨앗'

"수술이 잘 됐단다. 이제 괜찮을 거야."

지난 2월 서울 흑석동 중앙대 병원,베트남에서 온 휜 록 갱씨(huynh loc ninh · 38)는 아들의 얼굴을 보자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세 살짜리 아들은 일명 '언청이(구순구개열)'라고 불리는 천형(天刑)을 안고 태어났다. 그저 안타깝기만 하던 휜 록 갱씨 부자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던 건 두산그룹.중앙대병원 의료진이 베트남에 날아와 두 차례나 무료로 수술해 줬다. 완치가 안 되자 한국으로 초청해 다시 한번 수술을 실시했다. 붕대 속에 감춰져 있었지만 2시간 여의 수술 끝에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올 아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휜 록 갱씨는 하늘을 날아 오를 듯이 기쁘기만 했다. 두산그룹이 사회공헌활동으로 추진해온 '베트남 구순구개열 어린이 치료활동'이 휜 록 갱씨 가족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순간이었다. ◆어린이 환자에게 새 삶을…

두산그룹이 베트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두산중공업의 베트남 생산법인인 두산 비나(Vina)를 통해서다. 두산비나는 다낭에서 남동쪽으로 2시간 거리인 쭝꾸엇(Dung Quat) 공단에 자리잡은 베트남 최초의 중화학 클러스터다. 총 110ha(33만평) 규모에 보일러,해수 담수화 설비,배열회수 보일러(HRSG),운반 설비,화공 설비 등을 생산하는 5개 공장이 있다. 자체 부두와 항만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2015년 중장기 목표를 '수주 21조원,매출 17조원,영업이익률 10%'를 잡고 있을 정도로 두산중공업엔 중요한 해외 교두보다.

아직 공사가 한창이던 2008년 초,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진척 상황을 보고 받기 위해 두산비나를 찾았다. 당시 두산비나는 공장을 지으면서 지역 주민과의 화합을 중요시하고 있었다. 지역 주민을 위해 다리를 놓았다. 식수 시설도 개선했다. 이 같은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듣던 박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중앙대학교도 같이 참여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때 눈을 돌린 것이 구순구개열 환자였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어졌지만 베트남에는 이런 환자들이 많았다. 치료시설이 마땅치 않은 데다 치료비도 없어 상당수는 손을 놓고 있었다. 두산비나는 지난해 5월 중앙대 병원,꽝응아이 성 정부와 의료봉사활동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7월에는 중앙대 병원 의료진이 꽝응아이성 빈선현을 방문해 약 1000명의 지역 주민을 진료하기도 했다. 중앙대 의료진은 눈코뜰새 없이 바빴지만,현지인들의 감사인사에 피곤한 줄을 몰랐다.

◆의술로 한국 알린 두산

중앙대 병원 성형외과 배태희,김승홍 교수팀은 베트남행(行)을 거듭할수록 고민이 쌓여갔다. 현지의 의료 시설로는 해결할 수 없는 환자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그래서 일부 환자를 의료시설이 좋은 한국으로 직접 초청하기로 했다. 휜 록 갱씨와 그의 아들도 이렇게 한국까지 왔다. 이날 수술에 마취의로 직접 참여한 김성덕 중앙대의료원장은 "작년에 베트남 현지에서 구순구개열 환자 29명을 치료했었다"며 "현지 시설이 열악해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게 힘들어 아예 직접 초청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휜 록 갱씨의 아들을 비롯 4명의 베트남 어린이 환자는 무료로 중앙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미 현지에서 2~3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완치가 안 된 터라 지난 2월의 수술은 가족 모두에게 잊지 못할 기쁨을 가져다줬다. 이들은 모두 꽝응아이 지역 정부의 추천으로 선발된 극빈층 자녀들이다. 평소 신발을 신지 못할 만큼 가난해 한국에 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두산 비나와 중앙대 의료원이 왕복 항공료,수술비 및 한국 체재비(약 2만달러)를 모두 부담한 덕분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배태희 교수는 "이번 치료를 통해 베트남 아이들이 안면 기형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외부 활동에 어려움을 덜 수 있게 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환자와 보호자 일행 8명은 회복 치료까지 포함된 7박8일의 진료 일정을 마치고 무사히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중앙대 병원은 수술을 마치고 나서 조촐한 축하행사도 마련했다. 베트남보다 추운 날씨를 감안해 공항으로 방한복을 공수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을 가졌으니 마음껏 뛰어 놀고 큰 꿈을 키우라'는 카드와 함께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인형을 받은 어린이들은 생일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좋아하며 수줍게 웃었다. 두산비나는 의료봉사활동이 일회성 활동에 그치지 않도록 베트남 현지에서 시술한 29명을 포함한 구순구개열 환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조봉진 두산비나 법인장(상무)은 "얼굴 기형을 앓는 베트남 어린이들이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수술과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들어 가슴이 아팠다"며 "두산비나가 후원에 앞장서 어린이들의 예쁜 얼굴을 찾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