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사업 비중 높여라"…정유업계 투자 경쟁

주력사업 정유손실 만회 돌파구
에쓰오일, PX부문 1조4000억 투자
현대오일뱅크도 PX공장 건설
지난 10일 에쓰오일 울산 온산공장 수출선적 부둣가에 있는 바다 매립부지.18만4500㎡(약 5만5900평) 부지 한가운데 로켓처럼 생긴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 누워있다. 지름 10m에 길이 89.7m,무게 1057t에 달하는 원통형 구조물은 이 회사가 1조4000억원을 투자해 추진 중인 온산공장 확장프로젝트(SEP)의 핵심 설비인 파라자일렌(PX) 타워(사진)다.

◆에쓰오일 세계 최대 PX타워 건설3600t급 110m 높이의 초대형 크레인 타워마스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움직이자 30층 아파트 높이의 육중한 파라자일렌 타워의 앞머리가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타워가 완전히 수직으로 세워진 시간은 이날 오후 3시.작업을 시작한 아침 8시 이후 꼭 7시간 만이다. 허충 프로젝트건설팀 과장은 "수평축과 0.1도만 어긋나도 땅위에 박힌 48개의 앵커볼트(바닥 지지대)와 교접이 어긋나는 정밀한 작업"이라며 "국내에선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대형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에쓰오일의 SEP 프로젝트는 작년 이후 중국발 수요 증가로 시장 상황이 호전된 화학사업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작년 6월 공사를 시작해 49%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파라자일렌 타워는 자일렌을 원료로 합성섬유의 기초 원료인 고순도 PX를 생산하는 설비다. 이번에 설치한 파라자일렌 타워의 생산규모는 연간 90만t으로 단일 설비로는 세계 최대다.

에쓰오일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비(非)주력 분야인 화학사업을 키우는 이유는 수익성 증대를 위해서다. 주력 부문인 정유사업은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와 정제 비용을 뺀 것) 악화로 손실을 면치 못하는 반면 화학사업은 글로벌 수요증가와 제품가격 상승으로 호황을 맞고 있다. 작년 에쓰오일의 정유사업은 매출 14조8681억원에 763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지만 화학사업은 매출 1조3972억원에 199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정유사업 손실을 사업규모가 작은 화학사업 수익으로 상쇄한 셈이다. ◆비주력 화학부문이 정유사엔 효자

주력과 비주력 부문의 역전 현상은 에쓰오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주요 정유사들 역시 지난해 화학사업 부문 수익이 회사 전체의 실적을 떠받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SK에너지가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화학사업 부문을 정유사업과 동격인 CIC(회사 내 회사)로 승격시키며 힘을 불어넣은 것과 현대오일뱅크가 일본 코스모석유와 합작을 통해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연간 118만t 생산규모의 PX 공장과 22만t의 방향족(BTX · 벤젠 톨루엔 자일렌) 생산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에쓰오일이 SEP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내년 상반기가 되면 파라자일렌 생산규모는 현재 70만t에서 160만t으로 2배 이상 커지고,BTX 생산규모도 30만t에서 58만t으로 93.3% 늘어나게 된다. 신동열 에쓰오일 생산지원부문 상무는 "중국의 지속적인 화섬(폴리에스터) 산업 성장에 따라 아시아 지역의 파라자일렌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데 비해 공급은 부족한 수급 불균형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세계 석유화학 경기도 본격적인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화학설비 증설이 수익성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온산=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