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도요타리콜'의 숨은 주역들

"정말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윤경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연구소 기준실장은 지난달 19일 김진영 연구소장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카바야시 히사오 한국도요타 사장이 김 소장에게 연신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고 있었던 것.미국에서'도요타사건'이 터진 이후 자동차성능연구소(경기도 화성)가 자체 조사에 나선 지 100여일 만에,'도요타 리콜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지 40일 만에 도요타가 연구소의 조사결과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도요타 사장이 방문해 사과하기 일주일 전인 3월11일 조사결과를 놓고 도요타 측과 최종 회의를 가졌습니다. 리콜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조사결과를 보여줬어요. 도요타의 '항복'과 우리 측의 '만세'를 상징하는 11일을 상징적인 날로 잡은 거죠." 지난 6일 도요타 측의 공개리콜 발표의 이면에는 김 소장과 윤 실장 등 6명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세계 최대 자동차메이커를 상대로 차량결함을 조사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우선 "한국에 판매된 도요타 차량은 미국과 다른 매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리콜대상이 아니다"는 도요타의 주장을 뒤집을 증거가 필요했다. 차량 결함과 매트 문제를 정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팀원들은 일본차와 똑같은 도요타차와 매트를 찾아나섰다. 가속페달에 매트가 걸리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이마트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매트를 몽땅 조사했다. 예산이 부족해 분해용 도요타 차를 못 사자 팀원들은 민간 소유자를 찾아나서 어렵사리 충청도에 사는 차량소유자의 협조를 얻었다.

입체적인 조사를 통해 대책위원회는 17개 국내 매트 중 3개의 매트가 도요타 차량에 사용될 경우 가속페달이 걸려 사고의 위험이 있고 다른 3개도 매트걸림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도요타차량의 리콜이 단순히 매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속페달의 길이가 길고,설치각도가 가팔라 걸림 현상이 생긴다는 점도 입증했다. 한국도요타 측이 이미 1월 말부터 한국에서 판매한 차량의 가속페달을 고쳐서 판매한 사실도 알아냈다. 도요타라는 거물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역사적인 날이었다는 게 성능연구소 측의 설명이었다.

김동민 사회부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