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개인파산…판사가 직접 캐묻는다

빚 부풀리고 재산 빼돌리는 '모럴 헤저드' 가려내기로
법원, 구두심문 50%까지 확대…사기파산 형사고발
개인 사업자였던 Y씨(61)는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1990년대 중반 샐러리맨 생활을 그만두고 식품업체를 창업해 운영하던 중 소송과 경영난에 시달리다 2006년 결국 부도를 맞았다. 채무가 90억원을 넘자 그는 법원이 운영하는 개인파산 절차를 찾았다.

기존에는 서류상으로 심사했을 사안이었지만 법원은 Y씨를 직접 불러 파산 신청 경위를 꼬치꼬치 물어보기로 했다. 채무액수가 큰 만큼 돈을 뒤로 빼돌린 채 일부러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모럴 헤저드' 가능성이 의심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개인파산 심사가 대폭 강화된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11일 사기파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파산부가 마련한 새 대책 중 핵심은 서면심리가 원칙인 현재의 개인파산 심사를 바꿔 직접 불러 조사하는 구두심문 위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법원은 지난해 9%에 불과했던 구두심문 비율을 연내 최고 30%까지 높이고 장기적으로 50%까지 확대키로 했다.

파산부는 또 파산선고 후 면책절차(채무를 면제하기 위해 채무자의 자격 등을 알아보는 절차)를 진행하던 데서 벗어나 파산과 면책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동시진행 방식)을 확대, 사건처리를 신속히 하기로 했다. 파산부는 2008년부터 단독 2개 재판부에서만 동시진행 방식을 시범 실시해 왔으나 단독 10개 재판부에서 전면 실시키로 했다. 정상규 제5파산부 판사는 "향후 동시진행 방식 비율을 50%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산부는 개인파산 처리를 전문화하기 위해 지난 2월 전담 재판부 2개를 신설했다. 기존에는 개인파산 업무를 담당하는 법관들이 기업파산 업무도 함께 진행해 전문성이 결여되고 개인파산 업무가 지연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원에 따르면 개인파산 신청은 2006년까지 매년 급증하다 2007년부터 법원이 채무자의 재산이나 소득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면서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사기파산 혐의 등으로 신청이 기각당하는 건수는 2007년 124건에서 2008년 356건,2009년 640건으로 오히려 늘고 있다. 특히 수십억원 이상의 거액 채무 면책을 위한 파산 신청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정 판사는 "수백억원대의 채무를 부담한 개인이 파산 신청을 하기도 한다"며 "규모가 큰 사건은 기업 파산사건과 다를 바 없어 재산을 숨기거나 빼돌렸는지 여부를 더욱 엄격히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연 서울중앙지법 파산관재인은 "사기 파산에 대해 법원이 전혀 고발하지 않고 있는데 매년 10~20건 정도 형사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개인파산=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내리는 파산 선고.파산이 선고되면 대출,신용카드 발급,계좌개설 등을 할 수 없다. 공무원,변호사,기업 임원도 될 수 없다. 선고 후 1개월 이내 법원에 면책을 신청해 받아들여지면 나머지 빚을 면제받고 법적인 불이익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