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서 하이텍RCD 회장 "농아학교에 일감주다가 조세포탈 오해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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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봉사로 '명예의 전당' 올라
지난 8일 밤 필리핀 마닐라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필리핀 기업과 이곳에 투자한 해외 기업 등 관계자 수백여명이 모였다. 필리핀 최대 산업단지인 페자(PEZA)가 매년 주최하는 '투자자의 밤' 행사다. 하이라이트는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아웃스탠딩 어워드'.매년 수출과 고용,사회봉사,환경 등 네 가지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업적을 보인 회사에 수여된다. 3년 연속 수상한 회사는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다.
헌정식이 열리는 동안 기립박수를 보내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은 예년보다 유난히 많았다. 인텔,삼성전자,도시바,포드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단골로 차지하는 수상업체 명단에 올해는 한국의 중소기업 한 곳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박천서 회장이 경영하는 무선조종(RC) 장비업체 하이텍RCD가 그 주인공.2007년 이후 3년 연속 사회봉사 부문에서 수상하며 이날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받아야 할 상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부금액을 따지면 글로벌 기업들이 훨씬 많은데…."
박 회장은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연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하이텍RCD의 필리핀 현지 직원들의 평가는 남다르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박 회장 특유의 꾸준하고 조용한 봉사활동이 지역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설명이다. 그는 필리핀 진출 초기부터 지역 초등학교와 농아학교,병원 등을 찾아 청소와 봉사활동을 하고 기부도 병행해왔다. "현지 진출 기업의 초기 모습이 으레 저랬다"며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현지 직원들도 박 회장의 봉사활동이 10년 이상 이어지자 같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직원들이 일요일에도 봉사활동을 나가자 이를 업무 활동으로 인정해 급여를 주는 방식으로 화답했다.
하이텍RCD의 봉사활동은 엉뚱한 이유로 세상에 알려졌다. "초기에 농아학교 재학생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직업훈련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자부품 조립 일감을 맡겼습니다. 일거리를 차로 농아학교까지 배달한 뒤 조립이 끝나면 다시 가져왔죠.그런데 자꾸 전자부품을 공단 밖으로 뺐다가 들여오기를 반복하자 공단 측에서 국내 밀반출을 통해 조세를 포탈하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조사가 들어오더라고요" 공장에 들이닥쳤던 세관원과 공단 관계자들은 조사를 마친 후 거듭 박 회장에게 사과했고,이 일은 필리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박 회장이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것은 봉사활동이 경영의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니라 경영 그 자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필리핀은 수출의 86%를 해외 투자자들이 올릴 정도로 외국 기업 비중이 높지만 외국 기업들이 이윤추구에만 신경을 쓴다는 인식 때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필리핀 사람들이 많다"며 "하지만 하이텍RCD는 이익 이상을 되돌려준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직원들의 충성도와 생산성이 공단 내 다른 기업에 비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하이텍RCD는1973년 전자부품 제조업체로 출발해 RC용 모형 비행기와 자동차의 조종기수신기,동력제어 전달장치 등을 생산해왔다. 연간 1억1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이 분야 세계 3대 브랜드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