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의 뿌리' 채색화의 진화

자개·실크·아크릴 등 사용 현대화
춘추회 131명, 15~23일 아트페어

연꽃 이미지를 추상화한 그림,자개를 오브제로 활용한 시리즈,한지에 화석 이미지를 수놓은 작품….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채색화의 '탈(脫)장르'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양한 오브제와 표현 기법을 통해 채색화의 정신은 살리되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글로벌 회화'를 지향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고려 불화,조선 초상화,규방 예술 등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채색화풍은 옛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문인화풍과 함께 근 · 현대 한국화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월전 장우성 화백과 그의 제자들인 박노수 · 서세옥 등의 작품이 문인화풍이라면 박생광 · 천경자 화백은 현대 채색화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 평가된다. 채색화는 화면에 색을 칠한다는 점에서는 서양의 유화와 같지만 분채(안료 가루),석채(돌가루),아크릴 등을 아교(접착제)에 개어 물과 함께 한지 바탕에 칠하는 것이 다르다.

◆화가 131명의 채색화 파노라마=15~23일 서울 서초동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춘추회 아트페스티벌'은 근 · 현대 채색화 부문에서 박생광 · 천경자 화백이 다져놓은 기틀과 이후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자리다. '색채 공감'을 주제로 '보리밭 작가' 이숙자씨를 비롯해 신지원 조춘자 박필현 김인옥 최송대 홍병학 차영규 구철회 이수진 이숙진 오정미 강유림씨 등 왕성하게 활동 중인 중견 · 신진 작가 131명의 작품 1000점을 내건다.

인기 작가 이숙자씨의 작품으로는 '보리밭 사계' 등이 걸리고,자개를 오브제로 활용한 신지원씨의 신작 '시간 여행' 시리즈도 주목된다. 춘추미술상 수상 작가인 박필현씨는 연꽃 이미지를 추상화한 작품 20여점을 내놓고,이동연 강유림 김선경씨 등은 현대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인물화를 소개한다. 어눌한 표정을 묘사한 이동연씨의 인물은 소시민 일상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또 이숙진씨는 한지에 화석 이미지를 수놓아 세월의 덧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청색의 날',홍병학씨는 먹과 원색으로 그린 21세기형 산수화를 선보인다. 신지원 춘추회장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이 강한 중국 채색화,정교하고 치밀하며 감각적인 색채 구사가 두드러진 일본 채색화와 달리 한국 채색화는 둔탁하고 둔중하지만 깊이가 있다"며 "지나치게 밝고 맑으며 가벼운 것을 피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채색화 전성시대,작가 1000여명=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채색 화가는 무려 1000여명.저마다 독특한 재료와 기법으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중 원로 작가 민경갑씨를 비롯해 이숙자 이왈종 김덕용 정종미 임효 신지원 송수련 오태학 강길성 최한동 허진 전래식 이숙진 임종두 고찬규 장혜용 왕열 최한동씨 등 30여명이 독특한 기법과 참신성으로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채색화의 정신은 살리면서 아크릴 등 혼합 재료를 활용해 전통과 현대적인 기법을 넘나드는 작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중견 작가 김덕용(목판),정종미(종이),신지원(실크와 자개),전래식 · 장혜용 · 박필연 · 임효(아크릴),허정화(수간채색)씨 등은 한지 위에 혼합 재료를 사용해 '퓨전 한국화'의 영역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작가로는 원색으로 12세기 화조도를 그린 홍지연씨,전통예술인 낙화(烙火)기법을 응용해 인두로 한지에 작은 점을 내는 방식으로 점묘화 같은 화면을 구축한 이길우씨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화 전문화랑인 한국미술센터 이일영 대표는 "전통적인 수묵화 제일주의와 한국 채색화마저 일본 그림으로 선전한 일제 강점기 영향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채색화는 국적이 모호한 그림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며 "지나치게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서양의 기능적인 정교함을 받아들여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