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금융 Watch] 불붙은 은행산업 재편론…정부전략은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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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업그레이드 할지은행산업 재편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가 지난 8일 우리금융 지분 9%를 매각함으로써 재편 논의는 구체화되고 있다. 우리금융을 중심으로 한 이런저런 합병 시나리오도 나돈다. 매각절차를 밟고 있는 외환은행이란 변수도 끼어들었다. 은행들로선 합병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게 불가피하게 됐다.
또 다른 공룡은행 만들지
결국 정부의 역할에 달려
이러다보니 은행들의 관심은 정부의 의중에 집중되고 있다. 우리금융 주인인 정부가 어떤 판도를 구상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어서다. 국내 은행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대형화와 민영화는 좋지만…
작년 말 UAE(아랍에미리트)로부터 원전을 수주할 때다. UAE정부는 공사이행을 위한 은행 보증서를 요구했다. '신용등급 AA이상이며,세계 50대 은행일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조건을 충족하는 은행이 국내엔 없었다. SC제일은행을 통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보증서를 제출했지만, 상당액의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본 정부 관계자들은 국내에도 메가뱅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후 물밑에 가라앉았던 메가뱅크 논의는 다시 불거졌다. 마침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재료도 있었다. 우리금융을 다른 은행지주사와 합치면 민영화와 대형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는 논리가 부상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우리금융을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 것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해 '정부의 복안'을 공식화했다. ◆우량은행 간 합병의 추억
2001년 7월26일 서울 은행회관 2층 국제회의실.김병주 당시 국민 · 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장은 "합병은행장으로 김정태 주택은행장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두 은행이 합병 본계약을 맺은 것은 같은 해 4월23일.이후 3개월 동안 한 것이라곤 합병은행장 선출작업밖에 없었다. 당시 김상훈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팽팽하던 판세는 보이지 않는 '감독당국의 의중'이 작용하면서 김정태 행장의 승리로 끝났다는 게 합병작업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합병 국민은행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자산 185조원으로 단숨에 세계 68위권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뚜렷한 전략 없이 자리싸움으로 시작한 합병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정태 행장시절엔 옛 국민은행 출신과 주택은행 출신 간 갈등이 상당했다. 강정원 행장이 취임한 뒤엔 '사외이사 권한 비대화'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우리 · KB금융이 주역이라고?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지난 2일 "은행산업재편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다분히 내부전열을 가다듬자는 의도였지만,상당수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 행장은 10월이 임기다. 'KB금융 회장선임 파동'을 겪은 터라 3연임이 불투명하다. 금융산업 재편을 주도하기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상황이 다르다. 임기가 1년 남았다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우리금융의 주인은 정부다. 우리금융은 어디까지나 객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은행산업 재편의 주역은 누구일까. 다름아닌 우리금융 주인인 정부라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은행 고위관계자는 "뚜렷한 전략 없이 또다른 공룡은행을 만들 것인지,은행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지는 전적으로 정부에 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KB금융의 새 회장에 '정부와 교감할 수 있는 거물 민간인사'이름이 거론되는 걸 보면 아직은 대형화에 대한 전략은 없어 보인다.
경제부 금융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