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에 무시당한 하토야마…日, 벌써 후임까지 거론

후텐마 비행장 이전문제 논의 10분만에 퇴짜
환율ㆍ복지 혼란…국민이 선심정책 말릴 지경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가 10분 만에 퇴짜를 맞는 '망신'을 당했다.

일본의 외교적 위상이 추락하는 실례다. 이 때문에 그동안 하토야마 총리의 거취 문제에 대해 비교적 담담했던 일본 언론들이 드러내놓고 '총리 교체론'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12일 핵정상회의 만찬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근래 양국 간 현안이었던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거론하려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후텐마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도 않은 채 이란 핵문제와 미 · 일 동맹 강화와 같은 원론적 사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 개최 한 달 전부터 미 · 일 간 별도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따라 후텐마 기지를 현 바깥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다음 달 말까지 결정하려던 하토야마 총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두 신문은 전했다.

◆추락하는 지지율,75%에서 33%로

이런 상황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출범 당시 75%에 달했던 지지율은 이달 초 33%로 급락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최근 민주당 내에서 벌써 하토야마 총리의 후임자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며 "간 나오토 재무상과 하라구치 가즈히로 총무상,센고쿠 요시토 국가전략상 등이 '포스트 하토야마'로 언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반감을 키운 건 무엇보다 경제정책 운용에서 일관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일관성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경제 부문에서 핵심 관료들은 서로 딴소리를 내며 좌충우돌을 일삼았다.

환율 대응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은 당초 내수 증진 차원에서 엔고(高)를 용인하자는 입장이었다. 후지이 히로히사 전 재무상도 지난해 9월 내각 출범 당시 "인위적인 환율 안정책은 비정상적"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달러당 80엔 후반~90엔 초반이던 엔화 가치가 84엔까지 올라가자 하토야마 정권은 환율 관련 입장을 180도 변경했다. 후지이의 후임으로 임명된 간 나오토 부총리는 지난 1월 취임 당시 "엔 · 달러 환율은 달러당 90엔대 중반 이상이 적당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책임 있는 경제 관료가 어떻게 적정 환율이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운운할 수 있느냐"는 거센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하토야마 총리도 지난달 중순 "최근 엔화 흐름에는 약해진 일본 경기 상황이 반영돼 있지 않다"며 엔화 약세 유도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당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 · 달러 환율은 90엔대 초반에서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시장에서는 "하토야마 내각이 시장의 신뢰성을 이미 잃었다는 방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포퓰리즘 정책 논란도 가중

진통 끝에 지난달 어렵게 의회에서 통과된 자녀수당과 고교 수업료 무상화 등 각종 선심성 사회복지 공약들도 포퓰리즘 시비에 재차 휘말렸다. 재정 악화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돈 쓸 궁리만 한다는 비판에 부딪친 것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80%를 웃돌았다. 2012년에는 1000조엔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재무성은 올해 세수 전망이 정부 예산지출 92조엔의 40%인 37조엔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일본의 재정 악화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되면 정부가 파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토야마 정권이 내세웠던 선심성 공약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복지도 좋지만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날 경우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2월 니혼게이자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이용 요금을 2012년부터 전면 무료화하겠다는 공약의 시행에 대해 62%가 반대한 반면 찬성은 18%에 그친 것이 그런 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