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벨벳처럼 부드럽고 크림처럼 달콤한 '오보에 칸타빌레'

'오보에 거장' 알브레히트 마이어 28일 공연
카를로 이본의 잉글리시호른소나타 F장조서 목관악기 최고의 매력 느껴보길…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주자이자 현존 최고의 오보이스트로 평가받고 있는 알브레히트 마이어가 오는 28일 호암아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피아노 반주는 오랜 세월 함께 호흡을 맞춰 온 마르쿠스 베커가 맡는다.

독일 뉘른베르크 근교의 유서 깊은 대학도시 에를랑엔에서 태어난 마이어는 문화와 예술이 충만한 고도 밤베르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년합창단에서 활동했고 리코더 연주를 배운 뒤 열 살쯤부터 오보에를 연주하기 시작한 그는 1992년 스물 일곱의 나이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오보이스트가 됐다. '벨벳처럼 부드럽고 크림처럼 달콤한' 그의 오보에 음색은 많은 팬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2000년대 들어 독주자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마이어는 오보에 연주가로서는 드물게 많은 베스트 셀러 앨범을 보유한 스타 솔로이스트다. 2003년부터 독일의 대표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을 맺고 발매한 그의 독집 앨범들은 좀 색다르다. 하나의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는 여러 곡을 편곡 또는 조합해 앨범을 구성하고,화보 사진들로 음반 내지를 꾸며 팝 스타들의 앨범같이 만들어 낸 것이다. 클래식 음반으로서는 상당히 개성 있는 테마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의 성악곡과 기악곡들을 편곡해 연주한 2003년 첫 독집 '무언가',자신의 '음악적 아버지'인 마에스트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한 2004년 '모차르트의 발자취',바로크식의 '파스티치오(이탈리아어로 반죽이라는 뜻)' 기법으로 헨델의 아리아들을 편곡해 하나의 악장으로 배치하고 그것을 모아 새로운 협주곡으로 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음악세계를 구축한 2006년 '뉴 시즌즈'에 이르기까지 모든 앨범에는 그만의 개성이 충만했다.

특히 '뉴 시즌즈'는 유명 영상 프로듀서 베른하르트 플라이셔의 영상물로 제작돼 유럽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인 에효 클래식에서 2008년 '올해의 DVD' 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2008년 영국 음반사 데카로 이적하면서 발표한 '알브레히트 마이어 인 베니스'는 17,18세기 오보에 음악 황금기의 메카였던 베네치아의 바로크 음악을 조명한 음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발매돼 오보에라는 비인기 악기의 음반으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올해 나온 '바흐의 노랫소리'를 통해서는 자신의 음악적 고향과도 같은 바흐의 종교음악을 테마로 해 또 다른 매력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2004년 2월 첫 내한 이후 독주자로 세 번,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으로 두 번,모두 다섯 번 한국을 방문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적지 않은 방문 횟수였고,국내 팬층도 매우 두터운 편이다. 이번 내한공연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협주곡 협연자로 내한공연을 가졌던 것과 달리 온전히 오보에 독주로 이뤄지는 리사이틀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귀한 기회다.

오보에는 바로크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지만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 19세기 새로운 시대의 음악 발전에 맞춰 관악기들이 개량화되면서 더욱 화려하고 폭넓은 표현력이 요구되는 가운데 제한된 음향을 지닌 오보에는 독주 악기로서 그다지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에 작곡된 오보에 독주 음악들을 살펴 보면 보석같은 가치를 지닌 곡들이 적지 않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청중들은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슈만의 '로망스' 작품94,생상스의 오보에 소나타 D장조 작품166 등의 참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이어 연주를 논할 때 필자가 개인적으로 즐겨 쓰는 표현이 있다. '오보에 칸타빌레'(노래하는 오보에).노래를 부르는 듯한 유려한 프레이징은 오보에도 사람처럼 피가 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살아 숨쉬는 듯하다.

그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노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늘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연주할 레퍼토리 중 카를로 이본(Carlo Yvon,1798~1854년)의 잉글리시호른 소나타 F장조는 매우 의미 있는 곡이다. 세 개의 악장 하나 하나가 마치 벨칸토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아서 연주가에게 성악가와 같은 표현력을 요구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성악의 생명력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는 목관악기의 매력을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유럽과 한국,일본에서 그의 연주회를 무수히 보았고,때로는 그의 도움으로 쉽게 보기 힘든 특별 연주회를 여럿 듣기도 했지만 언제나 가장 큰 감동을 느낀 것은 무대 뒤에서 그가 보여주는 인간미였다. 그는 지난해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이뤘는데,최근 통화에서 '왜 수염을 기르게 되었냐'고 묻자 멋쩍게 웃으며 '아내가 좋아해서'라고 대답할 정도로 따뜻한 심성을 가진 음악가다. 이런 그의 인간미는 연주를 통해 청중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그의 연주에서 우리는 오보에라는 악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현대 목관악기 비르투오시티의 최첨단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28일 호암아트홀에서 있을 그의 첫 내한 독주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유정우 < 의사 · 음악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