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펀드런

세계 첫 뮤추얼펀드인 '매사추세츠 인베스터스 트러스트'를 만든 사람은 알루미늄 주전자 판매원 출신 에드워드 G 레플러라는 증권사 직원이다. 1924년 3월21일 동료 2명과 함께 5만달러로 보스턴에 회사를 세웠다. 자산이 1년 만에 39만2000달러로 늘어나면서 투자자도 200여명에 달했다니 나름대로 주목을 받은 것 같다.

당시 레플러는 자신이 재테크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을 만큼 '큰 일'을 벌였다는 걸 까마득히 몰랐을 게다. 지난해 3월 기준 미국에만 8000여개의 펀드에 9조2000억달러가 들어왔을 정도로 시장이 커졌으니 말이다. 세계적으론 16조달러가 운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엔 1970년 5월20일에야 펀드가 도입됐다. 대한투자신탁(현 하나UBS자산운용)의 '안정성장1월호'다. 이는 지금까지 최고령 펀드로 꼽힌다. 늦은 출발이었으나 지금은 330조원의 펀드시장이 형성돼 있다. 간접투자 시대를 열고 시장을 안정시킨 공이 크다. 문제는 아직 합리적 투자상품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개설된 펀드는 9100여개를 헤아린다. 개수로 치면 단연 세계 1위다. 반면 1개 펀드당 순자산은 2400만달러로 세계 주요 44개국 평균 2억7000만달러의 10분의 1 수준이다. 펀드매니저도 1100여명에 불과해 1인당 관리하는 펀드 수가 9개를 넘는다. 운용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컨설팅비를 뺀 수수료는 연 2.5%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함량 미달의 펀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펀드가 인기를 끌면 경쟁적으로 비슷한 상품을 만들어 팔고 나몰라라 방치하는 행태를 되풀이해온 탓이다. 주식형 펀드 환매가 이어지면서 올해만 5조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간 배경이기도 하다. 더 답답한 건 업계의 대응 방식이다. 자산운용사 대표들이 얼마전 대책회의를 열고 정부에 가입절차 간소화와 세제혜택을 건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운용능력을 키울 생각은 안하고 도움부터 청하고 보겠다는 안이한 발상이다.

월가의 전설적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던 13년 동안 연평균 29%의 경이적 수익률을 냈다. 개인생활을 모두 반납하고 주식 연구분석에 온 힘을 쏟은 결과다. 펀드런을 막으려면 금쪽 같은 고객돈을 맡아 주먹구구식으로 운용하다가 걸핏하면 정부에 손을 내미는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