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라진 소설가…산티아고에서 만난 것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404쪽 | 1만3800원
1983년 소설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서영은씨(67).문단의 중심에서 후배 문인들과 세인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던 그는 2008년 9월 돌연 모습을 감췄다. 내면적 창작이어야 할 글쓰기가 사회적 활동이 돼 자신의 입지를 만들고,그 안에서 자신이 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진짜 자기 자신에게 가 닿으려는 이들이 맨몸으로 떠나는 순례길,성지 산티아고를 향해서였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곳.《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서씨의 산티아고 순례기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앞서 간 순례자들이 그려 놓은 노란 화살표가 반딧불처럼 성지로 안내한다. 작가는 이 길을 '치타'라는 예명의 손위 제자와 동행하며 끝없이 경탄하고 쉼 없이 기록했다.

'산티아고는 길이고 숲이고,낙엽이며 바람이다. 걷기는 자연과 대지의 신비를 탐색하는 모노드라마이다. 그 드라마는 수고와 기쁨의 양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리가 수고하면 가슴에는 기쁨이란 이슬이 맺힌다…길을 걷다보면 한 걸음 이전과 한 걸음 이후가 변화 그 자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순례를 통해 작가가 체험한 변화는 어떤 것일까. 그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서 지난 시간 자신을 옭아매고 아프게 했던 온갖 인연들을 떠올리고 마음의 짐을 벗었다. 서른 살 연상의 소설가 김동리와의 애틋한 인연과 가슴 시린 사연들도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하나,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순례길 한가운데에서 작가는 홀로 초월적 존재를 직접 보고 만졌다. 코브레세스의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에서 만난 나귀가 바로 하나님의 사자였다. 아무도 없는 초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무념의 상태에 빠졌을 때 문득 다가온 나귀 한 마리를 통해 "나는 오래 전부터 너를 알고 있었다"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서씨는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걸었고,그 화살표가 가리킨 곳에서 나를 벗어던졌다. 그 결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