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디지털 노마드와 삼성

새 나침반 못 구하면 미래 불투명
모바일화와 창의력이 생존 관건
우리나라에서 삼성그룹의 위치는 공고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10년 기업집단지정' 현황에 따르면,삼성그룹은 6년 연속 자산총액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출,당기순익,고용,조세납부에서도 부동의 수위다. 국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을 놓고 볼 때,"삼성에 좋은 것이 대한민국에도 좋다"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이런 말에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삼성전자의 성공은 눈부시다. 그 일등공신은 '손사래'의 대상인 '총수'이다. 반도체는 장치산업이다. 따라서 설비투자의 타이밍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업체가 경기침체기에 투자를 줄일 때,삼성은 설비가격이 싸지는 경기침체기를 오히려 투자기회로 활용했다. 일본의 '고용사장'이 몸을 사릴 때 '오너'는 중장기 시각에서 투자를 선점함으로써 고수익 구조의 기반을 마련했다. 여기에 '위기경영론'이 절묘하게 더해졌다. 삼성전자는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썼다. 하지만 늘 위기는 '성공의 정점'에서 시작된다. 뒤통수를 보고 따라갈 대상이 없어진 삼성전자는 홀로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나침반을 갖지 못하면,삼성전자의 미래는 지난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를 갖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nomad · 유목민)의 시대"라고 했다.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익숙한 것을 버린다. 따라서 성(城)을 쌓지도 성에 머물지도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정신은 '길 위의 정신'이다. 유목민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길 위에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은 '모바일' 기술에 의해 제공된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승자는 디지털 제품에 '감성과 콘텐츠를 더하고 모바일화에 성공'하는 기업이다.

디지털 기술의 표준화와 모듈화가 이뤄져 이제 웬만한 디지털 제품은 '기술'이 아닌 '상품'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의 경계와 형태를 바꿨다. 비지오(Vizio)는 2009년 미국 LCD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소니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기업이다. 충격적인 대목은 전체 임직원 수가 168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지오는 핵심 역량만 남기고 나머지를 외부 전문기업에 맡긴 '네트워크형' 사업모델을 채택했다. 하지만 정작 네트워크형 사업모델의 최고 성공 스토리는 '애플'이 쓰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등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주요 부품은 한국과 일본 기업에서 들여오고,조립은 중국이나 대만 회사에 위탁한다. 애플의 경쟁력은 '기획력과 발상의 전환',즉 창의력이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의 후발주자였으나,아이폰이라는 '감성혁명'을 통해 스마트폰을 소비자 시장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이용자가 개발하고 탑재하는 '응용프로그램 장터(app market)'를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해,이른바 '앱(app) 열풍'을 일으켰다. 더 많은 개발자들이 몰려들었고,더 많은 앱이 만들어졌으며,더 많은 소비자들이 앱 때문에라도 아이폰을 사고 싶어하면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서 성공하려면,우군을 두텁게 쌓고 판도를 바꾸는 '게임 주도자'가 돼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얼마나 미래를 준비했나를 성찰해야 한다. 기술개발과 가치사슬의 위부터 아래까지 틀어쥐고,우리도 '아이'(i) 시리즈의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위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삼성전자는 기계를 파는 제조업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길 위의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 삼성전자의 미래는 없다. 그리고 삼성 비판 세력의 '총수와 가신' 타령도 웹 2.0 세상의 용어는 아니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