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EC, 골드만삭스 제소] 힘 받은 오바마…코너 몰린 월가

금융개혁 입법 탄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금융 규제 · 감독개혁 법안이 한층 힘을 받게 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월가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제소한 것이 순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파생금융상품 규제가 법안의 핵심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폴 볼커 경제회생자문위원장 등을 포함한 경제고문들과의 회동에서 파생상품 문제를 꺼내들었다. 그는 "파생상품은 강력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면서 "그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채 내 서명을 요구하는 어떤 입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못박았다. 17일 주례 라디오연설에서는 "의회가 개혁 법안을 가결하지 않을 경우 납세자 혈세로 금융회사를 구제해야 하는 경제위기를 또다시 겪게 될 것"이라며 조속한 법안 처리를 거듭 당부했다. SEC가 골드만삭스를 제소한 시점은 오바마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과 큰 시차가 없다. 서로 치밀하게 맞물려 가는 듯한 상황이란 얘기다.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상원이 개혁법안을 전체회의에 올려 표결을 할 예정이어서 더욱 민감한 시점에 나온 발표이기도 하다. 존 네스터 SEC 대변인은 "고소 발표 타이밍은 외부 행사와 무관하다"고 애써 강조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쉽지 않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이번 제소는 골드만삭스는 물론 개혁법안에 반발하고 있는 월가 금융계의 입을 두루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바마 정부에는 상당한 호재다.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투자은행들의 모럴 해저드와 파생금융상품의 폐해를 부각시켜 의회와 국민에게 월가 개혁의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가 은행들은 위기 이후 다시 대규모 보너스 파티를 벌여 여론의 지탄을 받아온 터였다.

SEC는 다른 투자은행들의 파생상품 설계와 판매도 계속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의 블랑시 링컨 상원 농업위원장은 SEC가 골드만삭스 제소를 발표하자 수시간 뒤 바로 별도 법안을 내놨다. 투자은행들이 연방정부의 여러 가지 업무 관련 보증을 받기를 원하는 한 파생상품은 아예 거래하지도 못하게 하고,파생상품 담당업무를 분사시키는 것이 골자다. 이는 거래소를 통한 파생상품의 거래나 청산을 요구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법안보다 강도가 훨씬 센 규제다. 미 언론들은 링컨 의원의 법안이 파생금융상품 시장을 뒤집어놓을 만한 것이라고까지 평가했다. 물론 상원에서 통과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민주당이 공화당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차단하려면 현재의 59석에서 1석이 더 필요하다. 공화당 중도파 일부를 지지세력으로 돌려세우기 위해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비롯한 백악관 경제팀이 측면 지원에 나섰으나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개혁 법안을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날 41명의 의원 전원으로부터 반대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서명을 받아놨을 정도다. 파생상품 규제,소비자금융보호기구 신설 등 일부 분야에서 초당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도 사기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법정 다툼을 선언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