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파워-2부 대도약] 외국인 1만 8천명에 유학비 지원…'차이나 장학생' 키워

(2) 소프트 파워 강국으로
지난 18일 상하이에서 폐막한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 원(F1) 중국 그랑프리.대회 기간 중 유독 눈에 띄는 광고 간판이 경기장 스탠드에 걸려 있었다. 붉은 색과 하얀 색으로 각각 쓰인 '中國製造'와 'MADE WITH CHINA'라는 광고 문구였다. "메이드 위드 차이나는 중국과 세계의 윈윈(win-win)을,중국 제조는 끝없는 기업가 정신을 상징한다. "(위루 중국 상무부 해외무역국 수출질서처장) 관영 신화통신은 "전 세계 6억명의 F1 시청자를 겨냥해 중국 정부가 내놓은 광고"라고 설명했다. 곽복선 KOTRA 중국조사담당관은 "중국이 이젠 덩치만이 아니라 소프트 파워도 강대국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고의 브랜드는 '중국'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다산즈 798거리.외국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400여개의 화랑이 즐비하게 늘어선 중국 현대미술의 메카다. 군수창고였던 이곳에 2000년부터 화랑이 하나둘 들어서 지금은 예술가촌으로 바뀌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798거리를 크게 넓히는 등 문화관광단지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그림 가격이 100만달러 이상인 세계 일류급 중국 작가만 15명에 이른다"며 "20세기에 미국이 그랬듯이 중국은 예술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로 우뚝 서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의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8억3000만달러로 프랑스(6억6000만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유명 중국 작가의 등장은 중국 명품 브랜드의 등장을 예고한다. "(이동재 아트사이드 대표)

'중화부흥은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소프트 파워의 신장으로 완성된다'(리샹둥 베이징대 교수)는 게 중국 정부의 생각이다. 중국이 2004년부터 해외에 열기 시작한 공자(孔子)학원이 이를 보여준다. 공자학원은 중국의 말과 글뿐 아니라 역사까지 가르치는 '중국문화 쇼핑센터'다. 서울을 시작으로 작년 말 현재 세계 83개국에서 282개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투자자'와 '세계의 시장'으로 진화해 나감에 따라 '중국위협론'보다 '중국기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며 "세계인이 느끼는 중국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형성하는 강력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 2007년 독일을 제쳤고 3년 만인 올해 일본까지 추월,세계 2위에 오를 전망이다. 경제 규모와 함께 소프트 파워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허촨치 중국사회과학원 현대화센터 주임은 "세계 131개국 가운데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는 문화적 영향력 지수가 1990년 11위에서 지난해 7위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차이나 커넥션'도 구축

지난 8일 전직 미국 고위 관료들이 중국에 집결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존 스노 전 재무장관은 상하이의 금융포럼,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은 하이난다오의 보아오포럼에 각각 모습을 나타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기회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노 전 장관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은 실수"라며 중국을 옹호했다. 폴슨 전 장관은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와 함께 보아오포럼의 새 이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중국은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을 각종 포럼을 통해 '중국방(幇)'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07년부터 하계 다보스보럼을 유치한 것이나 지난해 7월과 10월 베이징에서 세계 미디어정상회의와 싱크탱크 정상회의를 각각 처음으로 개최한 것도 마찬가지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중국방' 포섭 대상이다. 2005년부터 매년 노벨상 수상자 베이징포럼을 열고 있다. 지난해 11월 포럼에서는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가 "위안화를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구성 통화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SDR는 현재 달러 유로 엔 파운드로 구성돼 있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는 "중국의 잇단 국제포럼 개최는 중국의 목소리를 키우려는 소프트 파워 강화의 포석"이라며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국제무대에서 발언권 확대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중국은 평화유지군 파병과 원조,막대한 투자,상호교류,국제기구에서의 역할 강화 등을 수단으로 소프트 파워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최근 지진 참사를 겪은 아이티가 대만과 수교를 맺고 있음에도 평화유지군과 함께 지진 구호물자를 보낸 게 단적인 예다. 1990년대 초 마케도니아가 대만과 수교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마케도니아의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막았던 중국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또 지난해 150여개국 출신 1만8000여명의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줬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중국에서 장학금을 받는 외국인 유학생은 한 해 4000여명에 불과했다. 유학생 유치 정책은 자국 유학파들을 세계 각국 정부 요직에 포진시킨 미국의 선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계에서 '버클리마피아(미국 유학파)'가 득세했던 것처럼 '차이나 커넥션'을 세계에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판 타임워너 키운다

"외국의 거대한 미디어가 발언권을 독점하는 것을 막고 외국인들이 중국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는 게 소프트 파워 강화를 위해 중요하다. "(인민일보) 중국 정부가 연초 3~5년 내 연간 매출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이 넘는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 6~7개를 키우는 내용의 미디어 육성책을 발표한 배경이다. 중국판 타임워너를 만들기 위한 이 정책은 중국 미디어 기업들의 해외 기업 인수와 콘텐츠 수출을 돕는 내용도 담고 있다. '차이나 달러'의 사냥 대상이 자원 자동차 등에서 미디어로 확대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7월에는 신화통신이 중국판 CNN이라 불리는 24시간 국제뉴스 방송을 송출한다.

하지만 중국의 소프트 파워 강화가 자칫 과거의 문화 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민일보는 지난달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길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세계가 중국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계에 중국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하이엑스포만 해도 참가 국가관의 높이를 20m로 제한하면서도 중국관은 이보다 3배가 넘는 63m에 이른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