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학시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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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역사도 개혁 대상독일 유학시절 첫 강의 시간에 좀 황당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난다. 오전 9시 강의 시간에 맞춰 5분 전쯤 강의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강의실이 텅 비어 있지 않은가. 9시5분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코리안타임과 달리 독일인들의 시간관념은 틀림없다고 여겼기에,내가 강의안내서를 잘못 읽었겠거니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구성원 마음 얻어야 성공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강의일정에는 착오가 없었다. 단지 당시에는 전혀 예상 못했던 사유가 있었다. 정시보다 15분 늦게 시작하는 독일식 대학시계(akademisches Viertel) 탓이었던 것이다. 강의안내서를 들춰보니 '9시 c.t.'라는 표기가 눈에 들어왔다. 라틴어로 'cum tempore'라고 하면 통상 '정시에서 15분 늦게'라는 뜻이고 's.t.'(sine tempore)라고 해야 정시에 시작한다는 뜻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사태를 파악했지만 더욱 더 놀란 점은 그런 관행이 벌써 수백 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래는 이러했다. 중세 때 대학 강의는 대부분 대학도시에 흩어져 살던 교수들의 사가(私家)에서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시계탑 종소리를 듣고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으레 15분 늦게 강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선 강의실을 옮기는 시간이나 휴식시간을 주기 위해 사용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다소 썰렁한 그 일을 가끔 추억하며 대학이란 얼마나 오래된 시계며 또 케케묵은,만들어진 전통인가,그런 대학에서 개혁이니 혁신이니 한다는 게 그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생각한다.
중앙대식 구조조정에 대한 대학사회의 우려가 높다. 골리앗에 대항한 다윗 교수들의 고단한 목소리조차 사람들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언론에서 간혹 전해주는 소식에 여론마저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대학이란 참 오래된 조직이다. 서울대학교의 역사를 구한말까지 올려 잡으려는 시도로 설왕설래하지만 중세 대학의 발상지인 유럽에서는 지금 한 300년 묵은 대학이 한동안 신흥 대학으로 통했을 만큼 역사가 깊다. 대학은 한국에서조차 매우 오래된 시계다. 그 낡은 시계를 숨가쁘게 돌아가는 시장의 맥박에 맞추려니 제 아무리 경영수술의 명의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심! 환자가 죽을지도 모른다. 기업가의 눈으로 보면 대학이란 시계는 군데군데 녹이 슬고 태엽을 감아도 잘 돌지 않는 부속들로 가득찬,낡고 비효율적인 시계다.
그렇다면 대학이란 기구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전과 문명,지성과 지식의 전당으로 행세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대학이 사회변화에 잘 적응했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대학 자체가 적응과 생존의 능력으로 무장한 불멸의 전사였기 때문일까.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혹 대학 나름대로 독특한 방식,기업에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과 수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불변의 상아탑은 이제 더 이상 먹히지 않지만,현실 사회와 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 온 것,그리고 허점투성이지만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 타령을 하며 물리적 · 정신적 캠퍼스를 고수해 온 것,시장이 개개인의 골수까지 침범해 들어와도 어딘가,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연구실과 강의실을 지켰던 게 그 비결이 아닐까. 대학이라는 오래된 시계가 그런 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곰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조이는 곳이 있으면 약간 풀린 곳도 필요하다. 더욱이 어딘가 풀린 곳이 있어야 더 꽉 조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교수와 학생,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일 아닐까. 그들의 마음이 대학의 자산이자 활력이기 때문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