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한·중 FTA는 승부수

우리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성과에서 경쟁국들에 한참 뒤처져 있을 때 정부는 이를 만회하려고 소위 '동시다발적 FTA 추진'을 들고 나왔었다. 어떻게든 FTA에 속도를 내자는 이유가 제일 컸다. 그런데 이 동시다발적 FTA 추진에 '전략성'이나 '레버리지(지렛대)' 개념이 추가되면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올 법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비즈니스적인 감각이 확실히 뛰어난 것 같다. 지난 20일 이 대통령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한 · 중 FTA를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을 보면 특히 그렇다. 이 대통령은 "중국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시장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우리도 능동적,효과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원론적 얘기다. 최근 지식경제부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중국과 FTA 추진 여건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지경부가 제시한 근거는 이렇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점,중국이 내수 확대로 정책기조를 돌리고 있는 점,중국 · 대만의 경제협력이 긴밀해지고 있는 점,그리고 중국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정부가 한 · 중 FTA 논의에 갑자기 속도를 내게 된 이유를 다 설명해 주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주목해 볼 것이 이 대통령의 또 다른 발언이다.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한 · 중 FTA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한 것이 그 하나고,다른 하나는 이 대통령이 "지금의 한 · 중 관계로 보면 FTA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영향이 큰 몇몇 특수한 분야를 잘 절충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한 · 중 FTA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한 대목이다.

전자는 미국에 제시한 메시지다. 한 · 중 FTA의 의미를 잘 따져보라며 오바마 행정부에 미국 내 한 · 미 FTA 반대세력을 설득할 또 다른 명분을 던져준 셈이다. 사실 미국으로선 동북아에서의 경제적 이익,국제적인 역학 측면에서 한 · 유럽연합(EU) FTA보다 더 큰 사건이 한 · 중 FTA일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이 대통령이 우리 입장에서 한 · 중 FTA의 조건을 밝힌 것이지만 뒤집어보면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도 포함됐다. 중국이 한 · 중 FTA 성사를 바란다면 몇몇 특수 분야에서 양보할 생각을 하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중국도 한 · 미 FTA의 경제적, 정치적 의미를 생각해보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한 · 중 FTA는 승부수다. 미국에는 한 · 미 FTA 비준을 압박하는 것이고,동시에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향후 북한 변수 등을 감안할 때 정치적으로도 중국과 긴밀한 포석을 깔아 둘 필요성이 증대하는 시점이고 보면 특히 그렇다.

어쩌면 한 · 중 FTA 추진은 그 이상의 승부수일지 모른다. 당장 일본에 미칠 영향이 그렇다. 한국과 중국,일본이 3국 간 FTA를 연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솔직히 적극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 · 중 FTA 추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 일 FTA에 큰 자극제가 될 게 분명하다. 그만큼 우리로선 유리한 국면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얘기는 한 · 중 FTA로 우리 산업이 입게 될 피해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강구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하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