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신용평가사 '그들만의 잣대'

서구 중심에 평가 기준도 고무줄
일희일비 말고 경제체질 강화를
무디스는 왜 이 시점에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올렸을까. 예기치 않았던 희소식에 의문이 고개를 든다.

지금 우리 경제가 국가신용등급을 끌어올려야 마땅한 상황인지에 대해선 자신하기 어렵다.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는 하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것이지 아직 정상화된 단계는 아니다. 전년도의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가 크고 고용이나 소비 부진도 여전하다.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크게 확대한 결과 재정적자가 증가하고 국가부채도 큰 폭으로 늘었다. 게다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북한이 관련돼 있다는 심증이 짙어지면서 한반도의 긴장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형편이다. 어느 모로 보나 무디스가 우리 국가신용등급을 A2로 평가했던 2007년 7월보다 낫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국가신용등급을 올렸을까. 무디스는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한국 경제가 세계적 위기 가운데서도 재정적자를 억제하면서 예외적 회복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정부도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돕는 정책을 취했다"고 평가했지만 의문을 풀어주기엔 충분치 않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신용등급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국가부도위기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을 지원받는 처지로 추락한 그리스가 조정 전 우리와 같은 A2다. 거대한 국가채무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다른 PIGS국가들은 우리보다 2단계 이상씩 높고 영국의 경우는 최고 등급이 부여돼 있다. 우리가 서구 국가들에 비해 대단히 인색한 평가를 받고 있고,이번 조치는 그런 차별을 다소 시정한 데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의 고무줄식 잣대와 서구 중심주의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금융상품들에 대해 터무니없이 높은 등급을 매겨 버블을 만들고 투기 열풍을 조장한 게 단적인 예다. 돈벌이에 급급해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그들이야말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들어내고 세계 경제를 수렁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신용평가사들의 신용에 대해 회의론이 들끓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임은 물론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신용평가회사들과 악연이 깊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이들은 단숨에 우리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까지 끌어내렸다. 갑작스런 등급 후려치기로 인해 사회 · 경제적 혼란이 가중되고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융위기가 확산되던 2008년 11월에도 피치는 우리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꿔 국제 부동자금의 이탈을 부추겼다. 그로 인한 위기는 미국과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서야 겨우 진정됐다. 그런 회사들이 외환위기 당시의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그리스에 대해선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후한 평가를 하고 있으니 어찌 불신감이 생기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국채를 발행할 때는 물론 우리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도 그들이 부여한 신용등급은 아직도 투자자들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는 게 사실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들의 평가에 휘둘리며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국채나 회사채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나라경제가 건실하다면,기업 경영실적과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면 투자 자금이 몰려들고 가격 또한 그에 걸맞게 형성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누가 봐도 시비 걸기 힘든,투자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튼실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만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의 편견과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