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민금융 활성화' 안착하려면

대부업 금리규제 대폭 강화하고
부처별 지원 따른 중복 해결해야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서민금융기관의 보증대출 이자율을 우량 고객에 대한 대출금리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 정착시키겠다는 정책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서민대출은 무조건 금리가 낮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획기적인 저금리 대출의 확대를 기대한 서민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서민금융에 대한 정책적 접근법이 포퓰리즘의 틀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된다.

현재 서민금융의 가장 큰 문제가 고금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급히 먹는 떡이 체하고,급한 길일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신용도가 높은 사람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도록 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상충되기 때문에 서민금융이라고 해서 무조건 저금리를 적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건전한 시장질서의 확립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 서민금융기관에 무조건적으로 저신용자 대출을 강요하는 것 역시 이들의 건전성을 악화시켜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저신용자인 서민대출의 공급확대를 위해서는 공적기구에 의한 보증이 불가피하지만,서민대출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전적으로 정부가 떠안는 것도 대출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보증방식을 부분보증으로 바꾼 것은 대출을 담당하는 서민금융기관이 보다 신중하게 대출대상자를 선별하도록 함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정책의 전환이다.

서민대출을 보증하기 위한 재원을 모두 정부가 마련하는 대신 서민금융기관들이 일부 갹출하도록 한 것 또한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보다 충실한 긍정적 변화로 이해된다. 대출에서 얻는 이익은 금융기관이 가져가는 반면 손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공적보증제도의 가장 큰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서민금융의 취급역량을 강화하는 데 노력하는 대신 본업 이외의 변칙적인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일부 서민금융기관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구체적 방안도 이번 대책에 포함됐다. 상호금융회사의 비과세예금은 그 자체가 정책적 특혜란 점에서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서민대출로 운용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저축은행의 PF대출 등을 제한하는 것은 서민금융의 공급확대뿐 아니라 건전성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변변한 신용평가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저축은행의 신용평가 및 신용정보 수집체계를 개선하는 것은 이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다만 이번 대책에서 아쉬운 점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외국의 자본을 싼값에 들여와 고금리 서민대출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고 있는 대부업체에 대한 최고금리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당초 기대에 비해 아직까지 큰 실적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미소금융사업의 추진체제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시간 및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독립적 점포망 확대를 추진하는 대신 다양한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구들을 지역법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단기간에 서민들의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서민금융의 지원체제를 재정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지원 대책을 내놓아 대상이나 내용면에서 중복이나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으로 지원하는 복지정책과 서민금융정책의 주무 부처를 명확히 구분하고,후자에는 시장원리와 수익자 부담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각 부처에 분산돼 있는 서민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일원화하는 것 또한 서민금융시장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이건호 < KDI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