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CTO' 첫 기자회견은 PT

황창규 前 삼성전자 사장
지경부 R&D 기획단장 임명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발 빠른 선도자(fast mover)가 돼야 한다. "

반도체 집적도가 매년 2배 증가한다는 '황(黃)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전 삼성전자 고문이 21일 지식경제부 R&D(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 임명장을 받고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한 해 4조4000억원에 달하는 지경부 R&D 예산을 주무르는 '국가 CTO(최고기술책임자)'자격이다. 황 단장은 이날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첫 공식 브리핑을 했다. 그는 "앞으로 R&D는 선진국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가야 한다. 그것도 빨리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5년 삼성전자 사장 시절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일화를 꺼냈다. 삼성의 플래시메모리 반도체를 애플 제품에 넣으려고 잡스 회장과 몇 달을 만나 협상하면서 아이팟과 아이폰에 대한 비전을 들었는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다는 것.황 단장은 "애플은 이미 그 때부터 컨텐츠 서비스에 대한 개념을 갖고 준비했는데 우리는 스마트폰이 그렇게 빨리 퍼질 줄 생각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R&D도 마찬가지라는 것.황 단장은 "우리나라 산업은 태생부터 '발 빠른 추격자'였다. 정보기술(IT) 자동차 조선 원자력 같은 한국의 주력산업은 기존에 있던 것이지 우리가 창조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황 단장은 "앞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그런 기술을 개발하려면 절대 자기 역량만으론 안되고 산업 간 · 기술 간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과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융합은 기술 간 융합뿐 아니라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을 포함한다.

그는 "기술자들은 자기 분야만 파고들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못 볼 때가 많다"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고객을 감동시키는 제품을 만들려면 기술과 인문학 · 사회학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학들은 이미 이같은 추세가 보편화돼 있다는게 황 단장의 설명이다. 자신이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던 미국 스탠퍼드대학은 이미 학부 전공의 경계가 무너진지 오래라는 것이다. 17명 안팎으로 구성되는 지경부 R&D 전략기획단에는 기술분야뿐 아니라 인문계열 전문가도 포함시킬 방침이다. 황 단장은 또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열심히 했는데도 실패했을 때는 문제삼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하드웨어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까지 결합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며 "민간기업에 있을 때와 달리 국가를 위해 일하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글=주용석/사진=신경훈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