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대표 "샘플도 없이 영업…20년만에 '아시아 본사'로 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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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한국와트로 대표…본사서 'best CEO'로 선정"여직원 한 명과 전화기 한 대 놓고 영업을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외국법인의 한국대표를 맡아 본사 시스템까지 바꿨죠.그런 이유에서인지 해외법인 중 성공모델을 만든 'best CEO'라며 감사패도 주더라고요. "
올해로 외국법인의 한국대표를 맡은 지 20년이 되는 김계수 한국와트로 대표(60)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안 된다는 생각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각오로 밑바닥부터 뛴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장수 비결을 털어놨다. 와트로는 영국 싱가포르 등 12개 해외법인을 두고 산업용 기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열시스템을 팔아 연간 4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미국 회사다. 1976년 대림산업에 입사해 10년 넘게 중동에서 석유화학플랜트 시공 현장의 엔지니어로 일했던 김 대표는 1989년 말 한국법인장 모집에 응모하면서 와트로와 인연을 맺었다.
그렇지만 이듬해 첫출발은 열악했다. 사무실에는 여직원 한 명과 전화기 한 대,그리고 미국 본사에서 보내온 카탈로그가 전부였다. 제품 판매를 위해 샘플도 없이 카탈로그만 들고 기업체를 찾아다녔다. 김 대표는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늦도록 영업현장을 누비며 50여개 국내 기업과 경쟁했다"며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10년간 한 번도 매출액 10억원을 넘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김 대표는 궁리 끝에 완제품을 통째로 들여와 판매하던 방식을 핵심부품인 히터번들만 본사에서 가져오고 압력용기와 온도조절패널은 국내에서 생산,조립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이에 본사는 품질 저하를 우려해 반대했지만 밀어붙였다. 결국 물류비는 50% 이상 낮추고 통상 4,5개월 걸리던 납기도 2개월로 단축했다. 김 대표는 "온도를 ±1도까지 정밀 조절하면서도 가격이 국산제품 수준으로 떨어지자 판매가 늘었다"며 "일반 산업용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과 맞부딪치지 않기 위해 국내 기술로는 할 수 없는 석유화학 발전 항공 조선 방위산업분야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또 판매법인에 머물지 않고 와트로의 아시아 해외법인과 해외법인이 없는 국가에까지 수출하는 소위 '아시아 본사'로의 역할을 재정립했다.
이를 통해 2002년 이후 연평균 30~40%씩 신장,지난해 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직원 10명으로 일궈낸 성과다. 올 매출 목표는 100억원 돌파다. 피터 딜로지 와트로 회장은 "12개 해외법인 중 한국와트로는 성공모델"이라며 2008년 김 대표에게 'best CEO'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난 20년간 미국 본사의 비즈니스 행태를 바꾸는 게 힘들었다고 소개했다. 특근을 해서라도 납기를 맞춰달라고 요청하면 "본사 일정에 맞춰 일을 하라"는 지시만 돌아왔다는 것.김 대표는 거래기업에는 "납기일정을 며칠만 미뤄 달라"고 통사정하고 본사에는 "한국 비즈니스 관행을 이해해야 한다"며 설득했다. 이런 상황은 4년여간 계속됐다. 그런데 2005년께 본사가 확 달라졌다. 다급해 미국 현지시간으로 자정쯤 본사로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자가 받았다. 그는 "이제부터 한국 영업시간에 맞춰 대응체제를 갖추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김 대표는 "본사가 한국의 특성을 이해한 것이 매출 신장에 큰 힘이 됐다"며 "현지 비즈니스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행해야 해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