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분 쪼개기' 논란] 서울 650곳 '지분 쪼개기' 속수무책…투기꾼에 '면죄부' 주나

2003년 도입했던 금지 규정, 작년 개정한 '도정법'서 후퇴
서울시 "상위법 맞추려 완화"…혼란 막을 보완대책 서둘러야

"재개발 예정지역 곳곳에서 지분 쪼개기가 성행할 텐데 마땅한 장치가 없어져 큰일입니다. "

서울시에서 재개발사업을 담당하는 한 실무자는 22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과정에서 서울지역 전역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지분 쪼개기' 조례가 법적 근거 미비,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많아 상위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 개정안도 완화하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2월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무분별한 지분 분할을 금지하고 있는 서울시의 관련 조례가 대폭 완화될 경우 서울 재개발지역에 지분 쪼개기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수원 부천 광명 등 재개발 분양권을 노린 지분 분할이 성행하는 수도권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지분 쪼개기 사실상 허용 배경은

재개발 구역이 지정되지 않았지만 곧 사업이 추진될 지역에 대해선 사실상 지분 쪼개기를 허용한 이번 서울시 조례안은 '투기꾼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번 규제 완화에 대해 200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분 쪼개기' 금지 조례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재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지역에도 지분 쪼개기를 금지해왔다. 2003년 12월30일 이후 지분을 분할했다면 나중에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더라도 아파트 분양권을 1개만 인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2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개정하면서 지분 쪼개기를 금지하는 시점을 기본계획수립 이후 정비지역 지정 · 고시일 이전 특정일로 변경했다.

입법과정에서 재개발 구역 정식 지정 이후 '지분 쪼개기'를 금지하는 것이 법리에 맞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구역 지정 이전이라도 기본계획만 수립됐다면 '지분 쪼개기'를 규제할 수 있도록 시 · 도지사에게 재량을 인정해준 것이다.

◆재개발 · 뉴타운 구역 혼란 불가피서울시 조례안은 재개발 기본계획이 아직 수립되지 않아 정비예정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곳에 적용된다. 대상지역은 올해 기본계획이 수립돼 추가로 정비예정구역에 포함될 150곳과 노후 · 불량 주택이 몰려 있어 향후 재개발사업 추진이 예상되는 500여곳 등 650곳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지역은 2003년 12월30일과 2008년 7월30일에 각각 시행한 '지분 쪼개기' 금지규정을 적용받지 않게 돼 '지분 쪼개기'한 소유주들은 합법적인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또 기본계획이 수립되기 전에는 지분을 추가로 쪼갤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분양권을 노린 무분별한 투기성 지분 쪼개기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재개발 지역의 지분 쪼개기는 '조합원 수 증가→일반분양 물량 감소→채산성 악화→재개발 사업 지연'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앞으로 재개발 사업이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지분 쪼개기를 놓고 주민 간 불협화음도 일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성동구에서 재개발을 추진하는 A구역의 경우 '지분 쪼개기'로 인해 총 1137채를 짓는 재개발 구역에 조합원 수가 942명이나 된다. 임대주택을 제외하고 사업비로 충당할 수 있는 일반분양 물량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인천시 도화동의 한 곳에선 '지분 쪼개기'가 하도 많이 벌어져 재개발 사업 자체가 취소되기도 했다. 동대문구 전농동과 강서구 화곡동에선 주민들이 '지분 쪼개기'에 반대하는 시위까지 벌였을 정도다.

◆대책은 없나

7월부터 적용될 서울시 관련 조례는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정비구역 지정 · 고시를 앞둔 재개발 구역'에만 지분 쪼개기 규제를 적용한다.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에선 현실적으로 투기행위를 막을 '방어장치'가 없어진 셈이다.

이에 따라 보완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벌어질 지분 쪼개기를 막기 위해 구청장이 행정력을 동원,추가적인 건축행위를 막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정법과 당초 서울시 조례안의 충돌을 해소할 수 있는 경과 조치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시장이 재개발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권리산정기준일'을 최대한 앞당겨 적용함으로써 '지분 쪼개기' 행위가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부동산공법 연구단체인 도시개발연구포럼의 전연규 대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투기 행위와 재산권 행사 제약에 따른 위헌 소지를 동시에 해소하기 위한 법제정으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지분 쪼개기 행위를 막도록 보완책을 새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지분쪼개기=재개발구역에서 아파트 분양권을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해 단독주택,다가구주택,비주거용 건물 등을 허물고 구분 등기가 되는 다세대 주택으로 신축하는 것을 말한다. 지분을 쪼갠 만큼 해당 재개발구역의 조합원 수는 늘어난다. 지분쪼개기로 늘어난 조합원 수만큼 일반 분양물량이 감소돼 재개발사업 채산성이 떨어지고 사업 추진에도 걸림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