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천하 호령한 군주·지체 높은 선비도 '후회많은 인생' 이었네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심경호 지음 | 이가서 | 664쪽 | 2만8000원
내면기행 "나는 누구?"‥
선인들 자전적 기록 50여편 모아…깨어있는 늙은이라 칭한 영조
서얼 출신 실학자 박제가…'나'를 '그'라 묘사하며 시대 한탄
"또한 고인 가운데 육일거사를 본받아 육오거사(六吾居士)라고 스스로 호했다. 그 여섯이란 무엇인가. 곧 나의 밭에서 나는 것을 먹고 나의 샘에서 나는 물을 마시며 나의 책을 보고 나의 잠을 편안히 자며 나의 본분을 지키고 나의 연수(延壽)를 즐기는 것이다. 아아,오늘 이것을 실천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감흥이 여기에 미치자 오장이 콱 막히는 것 같아서 서북쪽에 한 와실을 세워 자성사(自醒舍 · 스스로 깨어 있는 집)라 했다. "

조선의 제21대 군주 영조(1694~1776)는 즉위 49년째이자 80세이던 1773년에 직접 쓴 '어제자성옹자서(御製自醒翁自敍)'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스로 깨어 있는 늙은이(자성옹)'라고 자신을 칭한 그는 출생 이후 자신의 삶을 연대기 형식으로 정리하면서 불효와 불민함을 통탄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생모 숙빈 최씨)는 계유년,갑술년,무인년에 세 왕자를 낳으셨는데 내가 그 가운데다. 아아,무술년에 돌아가신 이후 56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추존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탱했으니,어찌 효라 하겠는가?"

영조는 또 정축년(1757년) 2,3월에 왕비 정성왕후 서씨와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가 잇달아 죽은 일을 '심담구운(心膽俱隕 · 심장과 간담이 함께 떨어짐)'이라며 "부르려고 하지만 높디 높고 호소하고 싶지만 막막하여,세상을 올려다보고 굽어보지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고 탄식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는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가 영조를 비롯한 옛 선인들의 자서전적 기록 50여편을 모아 번역 · 해설한 책이다. 자기의 죽음을 미리 경험하는 자찬(自撰) 묘비명을 모아 저자가 지난해 펴낸 《내면기행:선인들,스스로 묘비명을 쓰다》에 이은 자서전 기획물.멀리 최치원으로부터 백운거사 이규보,권필,박인로,이서구,박제가,청허휴정(서산대사) 등 임금,선비,사대부는 물론 중인과 예술가,스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남긴 자전적 기록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18세기 말 이후 자서전적 글쓰기가 발달한 서구와 달리 한자문화권에서 자기 삶을 고백하고 인성을 성찰하는 글쓰기는 당나라 중기,멀리는 한나라 때까지 소급된다. 자서전이라는 말의 근원에 해당하는 '자전(自傳)'이라는 용어가 중당(中唐) 시기인 9세기에 이미 널리 쓰였고,이보다 앞서 사마천은 《사기》에 '자서(自序)'를 적으면서 자기 인생을 개괄했다. 기록의 형식도 서구 자서전의 산문체와 달리 운문,산문,스스로 쓴 비문이나 묘지명 등 다양했다.

기록의 대상을 '나'라고 하기보다 '그' '선생' '선비' 등 제3의 인물로 묘사한 것도 특징적이다.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선생의 자호다. …집에는 자주 식량이 떨어져서 끼니를 잇지 못했으나 거사는 스스로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단속할 줄 모르며,우주를 좁게 여겼다. …거사는 취하면 시를 읊으며 스스로 전(傳)과 찬(贊)을 지었다. 그 찬은 이러하다. '뜻이 본래 천지 바깥에 있으니 하늘과 땅도 그를 얽매지 못하리라.'"국문학사상 가장 방대한 규모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을 남긴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1168~1241)가 남긴 '백운거사전'의 일부다. 1189년 과거에 급제한 후에도 한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하던 시기에 그는 이처럼 탈속적이고 호방한 기운으로 숱한 시문을 지으며 스스로를 도연명에 비유했다.

그런가 하면 글과 사상으로는 당대 최고였지만 서얼 출신이라 차별받았던 박제가(1750~1850)는 '소전(小傳)'에서 자신을 '그'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지금 사람 가운데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아아,몸뚱이는 남아도 영구히 흘러가는 것이 정신이다. 뼈는 썩어도 영원이 남는 것이 마음이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마도 생사와 이름을 초월한 곳에서 그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또 한산 이씨 명문가의 후손인 이자(1480~1533)는 51세에 쓴 대장편의 '자서(自敍)'에서 가문의 영광과 선조의 덕행을 잇지 못했다며 탄식했다. "또 불행하게도 일찌감치 과거에 합격하여 폐조(연산군조)에서 두루 벼슬을 살았는데 억지로 벼슬살이를 하면서 그저 술로 스스로를 더렵혔다. …선을 좋아하길 독실하게 하지 않고 악을 미워하길 용맹하지 않아서 한세상을 그렁저렁 보내고 하루하루를 허랑하게 지냈으며,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 51세가 되고 말았다. 옹의 일생은 대략 이러하다. "'조선의 미친 선비'를 자처했던 조수삼,"조화의 큰 길을 가겠다"며 큰 뜻을 밝힌 신흠,"서너 잔 마시고 나면 남의 좋고 나쁜 점을 말하기 좋아해서 귀로 들은 이야기를 입안에 감추어 둘 줄 몰랐다"며 반성한 최해,책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아 스스로 '책만 읽는 바보'라고 했던 이덕무….자기 삶을 고백하고 성찰하는 50명 선인들의 이야기가 책에 가득하다. "자서전을 쓰는 일은 자기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는 가장 유력한 기획"이라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새삼 묻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