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주가 저평가 속 금리 올리면…한국판 '그린스펀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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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취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금리인상 논쟁이 또다시 거세게 일고 있다. 심지어는 공급 면에서 원자재값 상승과 수요 면에서 실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인플레 갭'이 발생한 점을 들어 지난해 11월이 금리 인상의 적기였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케인스 이론의 통화정책 경로상 금리 변경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시차가 6개월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주장대로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고 한다면 지금쯤이면 인플레가 나타나고 자산시장에 거품이 발생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물가지표는 안정돼 있고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 오히려 부동산시장은 폭락설까지 제기될 정도로 침체 기미가 뚜렷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인상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것은 통화정책을 추진할 때 자산가격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소위 '그린스펀 독트린(Greenspan's doctrine)'이다. 자산시장에 낀 버블을 식별하기 어려운 데다 경제성장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 수행의 주 요소로 고려할 수 없고,버블 붕괴 후 이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자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계속 낮춰 미국 경제가 고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 후 돌이킬 수 없는 금융 위기라는 '그린스펀 실수(Greenspan's failure)'를 낳았다고 뒤늦게 비판받고 있다. 이제 그린스펀은 '세계경제 대통령'이라던 칭송 대신 금융 위기의 주범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그린스펀 독트린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금리 변경과 같은 중요한 통화정책을 추진할 때 자산가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에서 '인플레 갭'이 발생하더라도 자산시장이 침체돼 있으면 금리인상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하고,FRB의 현재 통화정책도 이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번 위기 과정처럼 돈이 많이 풀리고 갈수록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는 지금 자산시장이 침체를 보이지만 나중에 발생할 인플레와 자산시장에 낄 거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 어느 정책보다 선제성이 강조되는 통화정책의 특성상 충분히 일리가 있는 시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금리인상과 같은 일반적 · 보편적 통화정책 수단보다 질적 · 선별적 통화정책 수단이다. 또 재정정책 등 다른 수단과의 조합(policy mix)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김중수 총재가 실물경기 회복세 속에 침체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인플레나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특히 실물경기 회복이 질적으로 완전치 못한 상황에서 이런 기대심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금리인상이라는 과격한 수단을 들이댈 경우 실물경기는 다시 둔화되고 자산시장은 돌이킬 수 없는 침체 국면으로 빠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고 검토해 봐야 할 것은 인플레 여건이 전반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전통적 목표대로 물가 안정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제다. 2000년대 들어 글로벌화와 시장경제의 확산으로 원자재값 급등과 같은 공급 면에서 인플레 요인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월마트 효과'로 대변되는 가격파괴 혹은 인하경쟁으로 최종 상품가격에 전가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요 면에서는 실제성장률이 잠재수준을 뛰어넘는 '인플레 갭'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물가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실제 성장률 가운데 자산 효과의 기여도가 크다. 또 종전과 달리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 등이 주력 산업이 된 세계 산업구조에선 한 나라 경기가 높은 성장을 하더라도 인플레를 유발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처럼 전반적으로 인플레 여건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전통적 목표인 물가안정을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여건에 맞게 통화정책 목표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긴 하지만 이미 FR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종전에 비해 '성장'에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케인스 이론의 통화정책 경로상 금리 변경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시차가 6개월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주장대로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고 한다면 지금쯤이면 인플레가 나타나고 자산시장에 거품이 발생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물가지표는 안정돼 있고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 오히려 부동산시장은 폭락설까지 제기될 정도로 침체 기미가 뚜렷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인상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것은 통화정책을 추진할 때 자산가격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소위 '그린스펀 독트린(Greenspan's doctrine)'이다. 자산시장에 낀 버블을 식별하기 어려운 데다 경제성장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 수행의 주 요소로 고려할 수 없고,버블 붕괴 후 이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자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계속 낮춰 미국 경제가 고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 후 돌이킬 수 없는 금융 위기라는 '그린스펀 실수(Greenspan's failure)'를 낳았다고 뒤늦게 비판받고 있다. 이제 그린스펀은 '세계경제 대통령'이라던 칭송 대신 금융 위기의 주범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그린스펀 독트린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금리 변경과 같은 중요한 통화정책을 추진할 때 자산가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에서 '인플레 갭'이 발생하더라도 자산시장이 침체돼 있으면 금리인상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하고,FRB의 현재 통화정책도 이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번 위기 과정처럼 돈이 많이 풀리고 갈수록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는 지금 자산시장이 침체를 보이지만 나중에 발생할 인플레와 자산시장에 낄 거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 어느 정책보다 선제성이 강조되는 통화정책의 특성상 충분히 일리가 있는 시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금리인상과 같은 일반적 · 보편적 통화정책 수단보다 질적 · 선별적 통화정책 수단이다. 또 재정정책 등 다른 수단과의 조합(policy mix)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김중수 총재가 실물경기 회복세 속에 침체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인플레나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특히 실물경기 회복이 질적으로 완전치 못한 상황에서 이런 기대심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금리인상이라는 과격한 수단을 들이댈 경우 실물경기는 다시 둔화되고 자산시장은 돌이킬 수 없는 침체 국면으로 빠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고 검토해 봐야 할 것은 인플레 여건이 전반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전통적 목표대로 물가 안정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제다. 2000년대 들어 글로벌화와 시장경제의 확산으로 원자재값 급등과 같은 공급 면에서 인플레 요인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월마트 효과'로 대변되는 가격파괴 혹은 인하경쟁으로 최종 상품가격에 전가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요 면에서는 실제성장률이 잠재수준을 뛰어넘는 '인플레 갭'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물가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실제 성장률 가운데 자산 효과의 기여도가 크다. 또 종전과 달리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 등이 주력 산업이 된 세계 산업구조에선 한 나라 경기가 높은 성장을 하더라도 인플레를 유발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처럼 전반적으로 인플레 여건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전통적 목표인 물가안정을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여건에 맞게 통화정책 목표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긴 하지만 이미 FR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종전에 비해 '성장'에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