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장만 찍고 노조 일은 뒷전…전임자 너무 많다

사실상 전임자 현대차 700여명·기아차 580여명
현장 조합원도 등 돌려…파업 찬반투표 부결로 나타나
"노조사무실에 가면 할일 없이 빈둥거리는 전임자들이 많습니다. 출근하는 것 같은데 필요 이상으로 많다 보니 일을 하지 않으면서 시간만 때우는 거죠."

현대자동차 노조 조합원 K씨는 전임자가 너무 많은 현장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회사일도,노조일도 안하는 이른바 '유한계급' 전임자가 넘쳐나고 있다는 고발이다. ◆전임자만 217명

현대자동차 노조의 조합원은 4만4000여명,전임자는 217명에 달한다. 전임자 98명에 임시상근자 119명을 합한 숫자다. 203명당 1명꼴이다. 여기에다 회사일을 거의 하지 않고 노조활동에 매달리는 대의원 480여명을 합하면 전임자 수는 사실상 700여명이나 된다. 조합원 63명당 전임자가 1명인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회사일과 노조일을 모두 하지 않고 '반백수' 상태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 간다. 연장근로,휴일 특근수당까지 받는다. 강성노조 활동을 통해 노조가 권력화,특권화되면서 나타난 폐단이다.

노조 상급단체 활동이나 정기총회,대의원대회,일반조합원 교육 등 노조 자체 활동도 유급으로 처리된다. 일반노조원 교육으로 연간 12시간이 유급으로 인정된다. 이를 단순 시간으로 환산할 경우 약 50만시간,금액으로는 40억원 정도가 일반노조원 교육에 쓰이는 셈이다. 요즘 현대차 노조보다 투쟁력이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기아차노조는 조합원 대비 전임자 수가 현대차보다 더 많다. 조합원 2만8000여명에 전임자는 144명(단협상 전임 86명+임시상근 58명)이다. 조합원 195명에 전임자 1인으로 현대차(203명)보다 전임자가 많은 셈이다.

여기에 대의원 437명을 포함할 경우 사실상의 전임자는 581명으로 늘어난다. 조합원 49명당 전임자 수가 1명인 셈이다. 이들이 회사에 끼치는 해악은 크다는 지적이다. 전임자들은 출석을 체크한 뒤 개인 일을 보는 경우가 많고 대의원들은 일부러 회의 시간을 늘리면서 근태를 조장하는 사례가 많다. 기아차노조원 K씨는 "집행부와 대의원 등 검은 조끼를 입고 있는 조합간부들은 권력이 막강해서인지 회사 측 통제도 먹히지 않고 행동도 마음대로 하지만 아무 간섭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조합원들도 '그들만의 노동운동'을 펼치는 전임자에게 등을 돌린다. 근면시간면제위원회의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가이드라인 결정을 압박할 목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현대차 노조의 파업찬반투표에선 찬성률이 38%에 불과,부결됐다. 역대 최저 찬성률이다. 현대차노조의 노동운동을 왜곡시켜온 전임자에 대한 현장조합원들의 부정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에 노동운동이 잘못 정착되면서 온건노조에도 전임자가 많다. 17년간 무분규 타결을 맺어 온 현대중공업 노조는 전임자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필요없다고 '고백'할 정도다. 현대중 노조는 올해 예산을 지난해보다 11.7% 줄인 23억3000만원으로 책정한 데 이어 집행부서를 12개에서 7개로 줄였다.

◆전임자 어느 정도 줄어들까

근면위가 결정할 적정 타임오프 인원은 현재 전임자 숫자의 몇% 수준일까. 7월1일 타임오프제가 시행되면 전임자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관건은 어느 정도 감소할 것인가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고백처럼 타임오프 대상과 노조 스스로 충당하는 무급전임자를 포함해 최소한 3분의 1 정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타임오프 대상 업무는 노사교섭,노사협의,고충처리,산업안전활동과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관리업무로 규정돼 있다. 상급단체활동 조합원모집,노조교육 등은 타임오프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적정 타임오프 대상은 몇명인가. 근면위의 현장 실태조사 결과 5000인 이상 노조의 경우 회사로부터 유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타임오프 대상이 4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55%는 상급단체활동,노조자체교육,노조원교육 등 노조 자체활동으로 유급으로 인정할 수 없는 활동들이었다. 결국 현재의 전임자 가운데 55%가 타임오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얘기다. 타임오프 대상만 따지면 적어도 70%는 줄어든다. 30%만 유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불필요한 전임자 3분의 1과 노조 자체활동만을 벌인 55%를 줄인 결과다.

전임자 217명인 현대차 노조의 경우 타임오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임자는 65명 수준이다. 하지만 현대차나 기아차 노조처럼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벌이면서 전임자 수를 늘려온 권력노조는 더 많은 감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