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짜리 뮤지컬 티켓 60%가 VIP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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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기획사 VIP석 남발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상민씨(50)는 최근 아내와 함께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러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성남아트센터에서 가장 비싼 R석(2장 19만8000원)에 앉았지만 주인공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 무대에서 먼 자리였던 것.화가 난 이씨가 성남아트센터에 따졌지만,"좌석배치는 공연 기획사들이 하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제작비 때문이라지만…
가격은 일반석보다 3배 비싸고 무대 멀어 관람에 큰 불편
인기 뮤지컬이나 발레 공연의 'VIP'석이 고객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는 곳도,기둥 뒤도 VIP석으로 둔갑하고 있다. 일부 공연장에선 전체 좌석 중 절반 이상이 VIP석으로 지정될 정도다. 표값은 일반석보다 세 배가량 비싸지만 만족도는 3분의 1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미스사이공' 최고가 R석이 절반 넘어
지난 16일부터 성남아트센터에 올려진 '미스사이공'의 전체 좌석 수는 1818석이다. 이 가운데 가장 비싼 R석(9만9000원)은 1080석.'로열'석인 R석이 전체 좌석의 절반을 넘는다. 일부 관객은 가장 좋은 위치에서 관람하는 대가로 값비싼 돈을 내지만 만족도는 뚝 떨어진다.
다른 유명 뮤지컬이나 발레공연의 좌석배정 비율을 봐도 고객을 위한 '배려'는 아주 모자란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28일 막을 내린 '시카고'의 VIP석(11만원 · 256석)과 R석(10만원 · 854석)은 전체 좌석 1786석의 62.1%나 된다. 여기에 S석(8만원 · 404석)을 합치면 무려 84.7%가 'VIP급'이다. 지난 1월29~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발레 '신데렐라'도 총 좌석(1635석) 가운데 7만원 이상인 R석 이상의 좌석비율이 53.5%를 차지했다. 백광선 국립발레단 기획홍보팀장은 이에 대해 "R석 이상 고가좌석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마진을 남겨야 하는 입장이어서 좌석을 7등급까지 세분화했다"고 설명했다. 올초 서울세종문화회관의 뮤지컬 '모차르트'나,비슷한 시기에 서울 강남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도 고가 좌석의 비율이 절반을 넘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불편한 VIP석 왜?
공연기획사들은 '제작비 문제'가 VIP석을 늘리는 이유라고 한결같이 답했다. 뮤지컬 관객 수요가 늘면서 덩달아 배우들의 몸값과 대관료가 오른 데다 대형 뮤지컬 공연이 많다 보니 고가첨단장비 사용 횟수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스 사이공 제작사인 KCMI 관계자는 "제작비를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우리만 수치가 높은 것이 아니라 최근 뮤지컬 좌석 비율은 다 비슷하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연기획자는 "협찬사들이 위치가 좋은 좌석을 무료로 요구해 어쩔 수 없이 R석 등 VIP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김순희씨(39)는 "비행기 1등석은 일반석의 5배 정도 비싸지만 그에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작년엔 기둥 뒤에 있는 S석 자리에 앉아 2시간 동안 공연을 본 경험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화영 세종문화회관 홍보마케팅팀 과장은 "공연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장소를 빌려줄 때 VIP 좌석 비율 가이드라인이 있기는 하다"며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공연기획자가 수익을 남기기 위해 좌석비율을 조정하는 데 관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동민/김주완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