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민간 자생력 회복'…힘 실리는 '저금리 폐해론'

출구전략 논란
"출구전략을 놓고 이제 정부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뭔가 변곡점이 올 지도 모른다. "

워싱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끝난 지난 24일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출구전략을 놓고 '국제공조'를 일관되게 주장하던 G20 회의가 '각국 사정에 맞는 자율'로 선회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더구나 1분기 성장률 속보치가 정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나오면서 출구전략을 둘러싼 정부와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기로에 선 출구전략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출구전략 '국제공조'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G20 재무장관 회의 결과를 담은 성명서에는 '공조'란 표현이 사라졌다. 대신 '국가들 간 다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회복 속도가 빠른 국가는 상황에 맞는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금리 조기인상 반대의 명분으로 삼아왔던 국제공조 근거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이제 금리인상 여부는 순전히 정부와 한은의 독자적인 경기 판단에 달려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출구전략 시행 시기를 놓고 시장과 분명한 갭(차이)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열 하나금융지주 사장도 27일 한경밀레니엄포럼에 참석,"경기지표를 보면 출구전략에 나설 때가 됐다는 것이 시장 기대치인데 정부는 아직 입장변화가 없다고 하니 시장이 혼돈스러워한다"며 "어떤 조건이 되면 출구전략에 나설 것인지 구체적인 암시를 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한발 빼는 정부그동안 '금리인상은 시기상조' 원칙을 견지해왔던 기획재정부는 최근 들어 입장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특히 G20 재무장관 직후 윤증현 장관의 '저금리 폐해론' 발언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민간 자생력이 회복될 때까지는 저금리 상태가 불가피하다는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금리인상에 관한 한 사실상 재정부가 한발 빼고 있다"(시장 관계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아직 입장 변화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저금리 폐해론' 발언이 보도되자 "원론적인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과잉 유동성을 그냥 두면 자산시장을 흔들어 버블에 이를 게 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최근 정부가 출구전략의 또 다른 축인 재정정책에서 변화를 준 것을 감안해 금리정책에서도 조만간 공식적인 입장 변화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재정부는 지난 2월 임시국회의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 때만 해도 "당분간 확장적 거시정책 기조를 견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확장적'이란 표현 대신 '적극적' 또는 '탄력적'이란 표현으로 용어를 바꿨다.

◆한은의 선택은한은에선 워싱턴 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 결과와 윤 장관의 발언으로 당혹해하는 표정이다. 김중수 총재가 출구전략의 국제공조 및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강조해 왔는데 G20 회의 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 때문이다.

또 윤 장관이 저금리의 부작용을 경고하면서 정부와의 공조도 어색하게 됐다. 한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윤 장관이 저금리의 폐해를 언급한 것은 일반적인 차원이며 한은에서도 늘 살펴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1분기 높은 성장세가 이후에도 이어질지,고용 회복세가 지속될지,물가나 자산가격 상승 등의 조짐은 없는지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준금리 변경 여부를 매달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 금통위원은 "통화정책은 금통위에서 결정하는 것이며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은 단지 참고 수준에 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경기지표가 좋아질 때 선제적으로 금리를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나중에 인플레가 발생할 때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시장 충격을 막을 수 있다"며 "과거 금융위기 직후 금리인하 타이밍을 놓친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금리인상이 조만간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시장 참가자들 모두가 알고 있다"며 "단계적 금리인상이 이뤄지더라도 유동성이 풍부한 채권시장이나 외국인이 주도하는 주식시장 모두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종태/서욱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