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디지털단지 입주기업 1만개 시대] ITㆍ지식산업의 '메카' 입주기업의 85%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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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인원 80% 대졸이상"재일교포들의 재산과 기술을 도입해 서울 근교에 경공업 중심 수출산업지역을 만들어야 합니다. "
1963년 6월22일,이원만 한국나이론공업 회장(코오롱그룹 창업주)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찾아가 이렇게 보고했다. 이 회장은 경제 근대화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라는 박 의장의 지시에 따라 일본의 수출산업 현황을 살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수출이 경제의 기틀을 가장 빨리 다지는 길이라는 이 회장의 보고를 받은 박 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1년2개월 뒤인 1964년 8월,이 회장과 조홍제 효성물산 회장(효성그룹 창업주),이양구 동양시멘트공업 회장(동양그룹 창업주) 등 기업인 16명은 한국경제인협회 건물에 모여 '사단법인 한국수출산업공단'을 발족시켰다. 국내 최초의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민간 추진기구였다. 이듬해 3월 수출산업공단과 정부는 구로구 구로동 일대 12만평을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첫삽을 떴다. 지금의 구로디지털단지,구로공단의 시작이었다.
구로디지털단지는 한국 산업의 변천사를 축약해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의 주력산업이 초창기 후진국형 가발산업에서 섬유 · 봉제산업,조립 위주의 단순 전자산업에서 정보기술(IT) · 벤처산업으로 변하는 모습이 한국 산업의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황무지에서 수출입국의 전진기지로
구로디지털단지에 처음 입주한 기업은 8개사.1966년 라디오를 조립하던 동남전기를 시작으로 7개의 재일교포 기업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생산품목은 비닐완구,안경,직물,고무풍선 등으로 그해 수출은 고작 13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공단은 그로부터 급격히 외형을 키워 1971년에는 입주기업이 100개를 넘어섰다. 국가경제 기여도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1977년 수출 10억달러로 국가 전체 수출의 10분의 1을 이곳에서 담당했다. 당시 공단의 주력은 가발과 섬유 · 봉제산업이었다. 1970년대 초 전체 입주기업의 38%가 가발 제조업체였으나 후반에는 섬유 · 봉제가 35%가량을 차지했다. 산단공 관계자는 "1970년대 구로공단의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36.5%에 달했다"며 "매년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이곳에서 담당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력산업은 전기 · 전자로 바뀌었지만 구로공단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했다. 1988년은 구로공단의 최고 전성기였다. 입주 기업이 263개사로 늘었고 수출은 43억달러(전체수출의 7%)에 달했다.
◆10년의 쇠퇴기
역설적이게도 최고 전성기였던 1988년은 쇠락의 시작이기도 했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불붙기 시작한 노사갈등은 구로공단 지역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을 불러왔다. 이는 섬유 봉제 등 노동집약형 산업의 쇠락으로 이어졌고 많은 기업들이 공장 문을 닫고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3D업종(더럽고,어렵고,위험한 일) 기피현상도 갈수록 확산됐다. 이 결과 국가경제 기여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수출은 1990년 40억달러에서 1999년 15억달러로 급락했고 같은 기간 고용인원도 5만5000명에서 2만9000명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사출업체인 삼흥플라스틱공업에서 1986년부터 일하고 있다는 조영재 이사는 "1980년대 중반 노조가 생겨나고 대학생들이 위장취업을 하는 등 한동안 공단 전체가 시끄러웠다"며 "그때 노조나 위장취업으로 시끄러웠던 회사는 주변에 남아있는 곳이 한 곳도 없다"고 회고했다.
◆국내 최대 IT · 벤처 집적지로
쇠락의 길을 걷던 구로공단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정부는 1997년 '구로단지 첨단화계획'을 수립,섬유 · 봉제 등 영세 제조업 대신 △고도화기술 △패션 · 디자인 △벤처 △지식산업 등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2000년에는 구로공단이란 이름도 '서울디지털단지'로 바꿨다. 이와 동시에 고도화 작업도 시작했다. 단층짜리 공장 대신 15층 이상 아파트형 공장으로 단지를 재개발한 것.그 결과 아파트형 공장은 2000년 6곳에서 2005년 48곳,올해 83곳으로 늘었다. 연내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아파트형 공장도 17개에 달한다. 박찬득 산단공 서울지역본부장은 "아파트형 공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2002년부터 매년 1000개 이상 기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고용인원도 매년 1만명가량씩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형도 커지고 있지만 입주기업의 85%가량이 IT · 지식기반 서비스 · 제조업체이고 전체 고용인원의 80%가 대졸 이상 고학력자"라며 "국내 최대의 IT · 지식 집적단지로 자리잡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과거 전성기에는 못미치지만 올해 생산과 수출도 증가세다. 올해 구로디지털단지의 생산과 수출 목표는 각각 6조8000억원,15억2000만달러로 작년보다 17%,10%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이태명/남윤선/심은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