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금융천재' 그린스펀은 정말 위기가 올 줄 몰랐을까

화폐전쟁2 | 금권천하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616쪽 | 2만5000원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은 인류사회가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결코 변한 적이 없고,상상 가능한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는 것이 있다면 부와 권력을 얻는 방식뿐이다.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권력을 휘두르던 금융과두들은 막후에 숨어버렸다. 대신 재단이라는 새롭고 방대한 시스템이 나타났다. "

전작 《화폐전쟁》을 통해 세계경제의 역사가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암투였다는 음모론을 폭로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주목받았던 중국의 국제경제학자 쑹훙빙(宋鴻兵).그는 후속작 《화폐전쟁 2-금권천하》에서 지난 300여년간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17개의 국제 금융엘리트 가문들이 어떻게 형성 · 발전돼 왔으며 서구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게 됐는지를 방대한 사료와 냉철한 논리로 추적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200여년간 절대적 강자로 군림한 이유는 다름 아닌 전쟁과 혁명 때문이었다. 혁명이든 전쟁이든 교전 쌍방이 폭력적 행동을 조직적으로 펼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량의 자금 융자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전쟁과 혁명 자체는 금융가문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전쟁과 혁명이 끝난 다음의 재건 프로젝트에도 대량의 자본융자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한마디로 전쟁과 혁명은 로스차일드 가에게 일석삼조의 효과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

저자는 프랑스혁명,나폴레옹전쟁,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스라엘 건국,전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과 히틀러의 집권,서방국가 정보기관의 탄생과 전세계 전쟁,공황,혁명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국제 금융가문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설명한다. 세계사적 주요 사건마다 이들이 첨예한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세력을 키웠다는 것.그 결과 금융가문들이 사회 전반을 채권이라는 고리로 단단히 묶어둔 채 게임법칙의 최종 제정자로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사실상 금융자본이 정부의 정책결정을 좌우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같은 맥락에서 2008년의 경제위기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라면서 앵글로 · 아메리카 파워 그룹,즉 미국계 국제금융 엘리트들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구조적 불균형으로부터 위기가 촉발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한 이후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화를 무절제하게 찍어냈고,이로 인해 잠재했던 각종 위험요소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결국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융엘리트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정말로 글로벌 경제위기를 예감 내지 예측하지 못했는지 의심한다. 달러화 남발을 방임한 것이 혹시 달러화 약세와 신용 하락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은 아닌지,달러화의 채무를 모두 벗어버린 다음 가볍게 새 출발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아울러 혼인과 제휴로 복잡하게 얽힌 금융엘리트 가문들의 인맥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각 정부기구와 석유 메이저,무기산업,제약산업,대중매체와 로비스트,사법 · 입법 기관,방대한 재단 시스템과 싱크탱크 등 국제사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맥관계야말로 금융위기,전쟁,혁명 등 국제사회의 동향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나침반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채의 늪에 빠진 미국이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해체한 것처럼,부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이럴 경우 미국 국채를 잔뜩 안고 있는 중국을 비롯해 외화를 벌어들여온 수출중심 국가들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또 유로화도,엔화도,위안화도 지역 대표통화는 될 수 있어도 세계기축 통화는 되기 어렵기 때문에 달러화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세계단일화폐는 금과 이산화탄소 배출권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세계 금융시스템의 게임 규칙은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되며,자본이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 금융위기 폭발의 근원"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달러 체제 이후 주권을 초월해 공평하고 안정적이면서 세계가 함께 부의 척도를 재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화폐를 만들도록 비서구 국가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